[횡설수설/이광표]객석 기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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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홀 1층 C블록 기부석이 비었다고 들었는데 그거 다 주세요.” 권오춘 초허당장학재단 이사장이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 ‘객석 기부’ 형식으로 2억 원을 내놓았다. 그러곤 “명패에 메시지 문구는 빼고 저의 호와 이름만 넣어 달라”고 당부했다. 객석 기부는 기부금 액수에 비례해 공연장 좌석에 기부자의 이름과 메시지를 담은 명패를 일정 기간 달아주는 방식의 기부를 말한다. 클래식 애호가로 알려진 그는 2004년 예술의전당에 1억 원을 후원한 바 있다.

▷객석 기부는 2010년대 들어 국내 공연예술계에 확산됐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2013년부터 객석 기부를 시작했다. 기부액은 1층 좌석 하나에 500만 원, 2층은 300만 원. 권 이사장은 1층 좌석 40개에 20년간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규모가 작은 공연장들은 좌석 1개에 보통 50만 원의 기부금을 받는다. 영구적으로 명패를 달아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5∼10년 동안 유지한다. “다시 오지 않는 이 시간! SHANE, 졸지 마세요^^” “이곳에서 누릴 또 다른 행복한 25년을 꿈꾸며. 은혼식 기념” “첫 월급으로 예술에 기부합니다”처럼 명패의 문구도 다양하다.

▷영국의 로열 페스티벌 홀, 미국의 카네기 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등 해외의 유명 공연장도 객석 기부를 하고 있다. 미국의 앨리스 튤리 홀은 2009년 재개관하면서 1087개의 좌석을 마련했다. ‘객석에 이름을 새기는 1087가지 이유’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객석 기부 캠페인을 벌였다. 기부자 명패에 담긴 메시지에서 1087가지의 감동 스토리를 만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가였던 가이우스 마에케나스(Gaius Maecenas)는 비천한 신분의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가 문학적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 로마의 문화 융성을 이끌었다. 그 덕분에 마에케나스는 예술 후원을 뜻하는 메세나(Mecenat)라는 용어로 기억되고 있다. 일정 기간이지만 공연장 객석에 자신의 이름과 스토리를 남길 수 있다는 건 객석 기부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광표 논설위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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