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중국의 2인자 왕치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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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에, 시진핑의 오른팔인 왕치산은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됐다. 왕치산은 지난해까지 중국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1인이었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68세가 정년’이란 관례에 따라 은퇴했으나 5개월 만에 돌아온 것이다. 전국인대에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옆에 나란히 앉아 관례에 없는 사실상 ‘제8의 정치국 상무위원’임을 분명히 했다.

▷스탈린에게는 베리야가 있었다. ‘스탈린의 개’라고 불렸다. 스탈린 시대의 잔혹한 숙청은 베리야가 주도했다. 시진핑에게는 왕치산이 있다. 시진핑과 같은 태자당 출신이면서 5년 선배인 그는 ‘시진핑의 저승사자’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왕치산은 시 주석 1기 당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맡아 부패 척결을 빌미로 저우융캉 등 시진핑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집단지도체제를 깨고 마오쩌둥 시대의 단일지도체제로 돌아가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왕치산은 선출된 뒤 시진핑과만 악수하고 리커창 총리와는 악수를 하지 않았다. 2인자는 리 총리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과시한 것이다. 시진핑은 2970표 중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왕치산은 반대표가 한 표 나왔다. 반대표 숫자까지 짜고 친다는 전국인대다. 시진핑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헌법 조항이 반대표 2표가 나온 것과 비교하면 헌법보다 위다. 왕치산은 헌법 선서를 한 뒤 주먹으로 연단을 내리쳤다. 그는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팬이다. 드라마 주인공이 강함과 결의를 보여줄 때 테이블을 두 번 치는 습관을 따라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마오 시대는 저우언라이라는 2인자가 있었다. 장쩌민 시대에는 후진타오라는 후계자, 후진타오 시대에는 시진핑이라는 후계자가 있었다. 시진핑은 후계자를 없애버린 것이 마오와 비슷하다. 2인자만이 가능한 시대다. 저우는 외교를 맡았다. 왕치산도 외교를 맡아 시진핑 장기 집권의 토대를 닦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터프한 굴기(굴起) 외교가 눈에 그려진다. 한반도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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