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그녀가 경찰서 앞에서 돌아선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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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특파원
박용 특파원
20여 년 전 밤 서울행 시외버스 안은 캄캄했다. 서울에 가까이 왔을 무렵 여성 승객의 비명이 정적을 깼다. 버스 앞쪽에 앉은 한 여성이 벌떡 일어나 옆자리 남성을 핸드백으로 때리며 고함을 질렀다. 깜빡 잠든 사이 성추행을 당한 것이다.

피해 여성은 “경찰서로 가달라”고 외쳤지만 버스 운전사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운전대는 돌아가지 않았다. 버스 안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뒷자리에선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바쁜데 그냥 갑시다. 그런 일로….”

운전사와 승객의 외면 속에서 그녀는 홀로 버텼다. 그 남자의 팔을 끌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평범한 중년의 회사원은 순한 양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피해 여성의 손에 이끌려 버스를 내렸다.

그러나 정거장의 어둠 속에서 남자는 ‘야수’로 돌변했다. 오히려 여성의 손을 잡아끌고 어딘가로 향하려고 했고, 이번엔 여성이 소리를 지르며 버텼다. 다행히 젊은 승객 몇몇이 버스에서 내려 남자를 막아섰다.

시민들이 합세하자 그 남자는 도로를 가로질러 달아났다. 컴컴한 골목에 주차된 트럭 밑에 엎드려 숨어 있다가 다시 끌려왔다. 남자는 다시 고분고분해졌다. 주민등록증을 맡기며 붙들린 팔이 아프니 풀어달라고 애걸했다. 피해 여성에게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매달렸다. 중국 전통극 변검(變臉)의 연기자처럼 가면을 바꾸고 표변하는 그를 보며 시민들은 혀를 내둘렀다.

홀로 당당하게 맞섰던 그녀의 눈에서 비로소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그날 남자를 경찰서로 데려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용서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게 무섭고 두려워 빨리 벗어나고 싶다”며 흐느꼈다. 처음 가보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일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 가해자와의 대면, 피해 사실의 입증, 나이 드신 부모님을 밤중에 불러야 하는 일들까지….

성폭력의 공포는 범죄자 혼자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무관심하거나 위세에 눌려 고개를 돌려버린 많은 승객들의 무정하고 불편한 시선들도 그날 밤 그녀를 경찰서 앞에서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권력자의 상습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은 우리 사회가 20여 년 전 그날 버스 안의 상황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걸 말해준다.

위계질서 속에서 이뤄지는 권력자의 상습 성폭력은 개인의 일탈 차원을 넘어선다. 누구나 ‘안 돼(No)’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힘으로 모든 걸 가지겠다는 권력자의 망상과 은밀한 일탈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미투 운동이 ‘정치공작’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음모론도 나오지만, ‘성폭력 공포로부터 자유’ 같은 인간의 기본 권리보다 먼저 고려할 가치는 없다. 일반 성범죄자와 달리 권력자의 성폭력에만 ‘공작의 관점’을 특별히 고려해야 할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 ‘이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음모론이 힘겹게 경찰서 앞까지 간 피해자의 발길을 돌리게 할 수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 ‘포프리덤’ 공원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1년 연설에서 제시한 4가지 자유(언론과 종교의 자유, 결핍과 공포로부터의 자유)의 비전을 새긴 기념비가 서 있다. 비문은 이렇게 끝난다. “이는(자유의 비전은) 먼 새 천년의 비전이 아니다. 당대가 이루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확고한 기초다.” 우리는 성폭력의 공포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는가.

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미투#성폭력#성추행#me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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