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 최고강도 제재 가동… 다시 냉엄한 북핵 마주한 한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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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3일 북한의 해상교역을 사실상 봉쇄하는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북한 홍콩 파나마 국적의 선박 28척과 중국 싱가포르 대만의 무역회사 27곳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해상 화물 바꿔치기’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조치다. 이로써 중국이 열쇠를 쥐고 있는 원유 공급 완전 차단을 제외한 가동 가능한 모든 수단의 대북제재망이 구축됐다. 북한의 핵 개발이 시작된 이래 가장 강도 높고, 포괄적인 제재가 가해지는 것이다. 남북 단일팀 등으로 17일간 평창에서는 해빙의 열기가 높아진 듯이 보였지만, 한반도가 직면한 냉엄한 북핵 대치 현실은 변한 게 없음을 실감케 하는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제재의 효과가 없으면 우리는 제2단계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2단계는 매우 거친 것이 될 수도 있고, 전 세계에 매우, 매우 불행할 수도 있다”며 “바라건대 제재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북제재를 총가동했는데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남은 것은 군사 옵션밖에 없음을 경고한 최후통첩과 다름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제재 조치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일행의 방한 등 남북 접촉 기류에도 불구하고 대북 압박은 더 강하게 가해져야 한다는 미 행정부의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김영철 일행과 한 시간가량 만나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 북-미 대화가 조속히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북 대표단도 북-미 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의 발표에 따르면 어제 비핵화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오늘 열릴 김영철 일행과의 고위급 회담에서 전향적 비핵화 메시지를 내놓도록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만약 북이 한국을 약한 고리로 삼아 국제 제재에 균열을 내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오산임을 깨닫고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김여정 방한 때 비핵화를 언급조차 안 했던 정부가 이번에도 비핵화를 거론 안 하는 저자세를 보인다면 ‘평창 모멘텀’은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 남북 대화가 비핵화를 위한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설명에 따라 지켜봐온 국제사회도 남북 대화에 대한 지지를 접을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 내에서는 펜스-김여정 대화의 기회를 북한이 걷어차는 바람에 더 이상 대화의 동력을 찾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나온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갖고 대화에 임하지 않는 한 설령 북-미 접촉이 이뤄진다 해도 자신들이 바라는 어떤 것도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깨달아야 한다. 라트비아에서 세 번째 큰 은행인 ABLV가 최근 대북거래 혐의로 미국 당국의 제재를 받자마자 유동성 위기에 빠져 파산을 예고하고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김정은은 그물처럼 촘촘한 제재망을 벗어날 샛길이 없다.

천안함 유족들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어제 김영철 일행의 이동경로인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을 막고 농성을 벌였다. 정부가 김영철의 방한을 수용한 것이 남북 대화 고리를 이어가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해도, 그 고육책의 목적이었던 비핵화 논의에서 아무 진전을 얻지 못한다면 김정은의 노림수에 놀아나면서 천안함 유족의 가슴에 상처만 남긴 오판으로 기록될 것이다. 17일간의 ‘올림픽 휴지기’는 끝나고, 우리는 다시 조금의 시행착오도 용납되지 않을 중차대한 북핵 대치 국면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북한 추가 제재 조치#김영철 방한#대북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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