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하]이제, 사고공화국에서 벗어나야 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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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일본의 두 배 이상
‘빨리빨리’ 벗어나 느려도 안전 중시를
사고예방 예산 확대… 재해보장도 신경을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지난해 12월 5일 영흥도 낚싯배 전복 13명 사망, 2명 실종, 12월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9명 사망, 40명 부상, 올해 1월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49명 사망….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의 주요 방향을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로 잡는 등 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노력하여 왔지만 연말연시에 발생한 여러 대형 사고는 이를 전면 무색하게 하는 것이어서 당황스럽다.

2016년 기준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는 4292명,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는 2024명, 산업재해 사망자는 1777명에 달한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2015년 기준)는 9.1명으로 일본 3.8명, 독일 4.3명, 프랑스 5.4명 등과 비교할 때 2배 내외 수준이고, 인구 1만 명당 산업 재해 사망자 수(2014년 기준)도 일본 0.19명, 독일 0.16명보다 훨씬 높은 0.58명이다. 다른 국가와 비교하기에 앞서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나라에서 살아 있는 사람도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지 못한다면 이처럼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교통사고, 산재사고, 자살 등의 사망자 수를 2022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국민 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의 추진 계획을 발표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대책만으로 5년 내에 재해가 절반으로 감소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안전과 관련된 국민의식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40여 년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 국민은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 한국인 하면 가장 먼저 ‘빨리빨리’가 연상된다고 할 만큼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옆도 보고 뒤까지 살펴도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앞만 보고 뛰어 왔으니 사고 발생이 많아지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사고공화국’의 오명을 쓴 채 아직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좀 느리게 가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과거 성장시대에는 자식과 가족 걱정에 물불 가리지 않고 살았지만, 이제는 본인이 건강하게 살아야 가족도 행복함을 인식해야 할 때가 됐다.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면 정부가 안전 관련 규제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 요소를 전면적으로 점검하고 안전과 예방을 위해 필요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교통안전 시설에 대한 예산을 벌과금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예산을 좀 더 증액하고, 경영난을 겪는 지방의료기관이나 다수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 등에 대해서는 안전과 예방에 필요한 경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현 정부의 공공질서 및 안전을 위한 2018년도 예산 증가율은 전년 대비 5.1%로 전체 예산 평균 증가율 7.1%보다 낮게 정해졌다. 일자리와 복지 예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안전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재해 발생률이 다른 선진국보다 크게 높기는 하지만 너무 과하게 우리 자신을 비하해서도 안 된다. 국민의 안전의식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고 정부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재해 발생은 그래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07년의 6146명에 비해 30.2% 감소했고, 산업재해 사망자 수도 2007년의 2406명에 비해 26.1% 감소했다. 재해 발생률이 낮아지고 있는데도 국민 불안감이 과거보다 더 높아진 것은 언론 매체의 재해 관련 보도가 더 빈번해진 것도 원인이다. 재해 발생 건수가 동일하더라도 언론 보도가 더 많아지면 더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여기에는 인터넷 매체가 늘어난 것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언론 매체의 재해 관련 보도는 사고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높여 안전 불감증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도 분명 있지만 안전교육과 예방을 고려한 균형감 있는 보도 자세가 요구된다.

한편 불가피하게 사고가 나더라도 다친 곳을 치료하고,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본인이나 그 유족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재해보장 대책도 예방만큼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어디서 무엇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였느냐에 따라 그 보상금액이 천차만별이다. 운이 없어 사고를 당한 것도 슬픈 일인데, 힘없고 말 없는 사람에게는 손해보상도 박하고 사회보장도 미흡하면 정말 불공평한 사회라 할 수 있다. 산재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자동차보험 손해보험 등 각종 보상과 보장 제도를 원점에서 일체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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