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방관했던 나를 반성” 남성들도 줄고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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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관련 오동식 양심선언 이어… “고통받는 후배들에게 사과한다”
조민기 제자 등도 동참 대열

문 닫힌 연희단거리패 작업실 2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연희단거리패의 작업실 ‘30 스튜디오’ 
내부. 이윤택 전 예술감독의 성폭력 파문으로 극단이 해체를 선언한 뒤, 인적이 끊긴 채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문 닫힌 연희단거리패 작업실 2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연희단거리패의 작업실 ‘30 스튜디오’ 내부. 이윤택 전 예술감독의 성폭력 파문으로 극단이 해체를 선언한 뒤, 인적이 끊긴 채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방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합니다.”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의 내용이다. 작성자 A 씨는 자신을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난을 받으며 침묵하기보다 함께했던 동료들을 위해 이제 사실을 모두 적겠다”며 배우 조민기 씨(53)의 제자였던 시절의 일을 털어놨다.

A 씨는 “식사나 술자리가 있으면 항상 조 교수 옆자리에 여학생들이 앉아야 했다. 힘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만취한 조 교수를 저녁 늦게 오피스텔에 재우고 나오면서 ‘탈출했다. 다들 고생했다’며 학교로 가던 발걸음이 생생하다”며 당시 느꼈던 자괴감을 토로했다.

A 씨는 “이런 언행을 하나의 배움이라고 가르쳤던 조 교수에게 너무 화가 난다”고 밝혔다. 특히 “당시 아무것도 하지 못해 미안하다. 지금도 고통받을 후배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그들의 아픔을 내 기준에 맞춰 짐작하며 침묵하고자 했던 나는 방관자이며 죄인이다. 죄송하다”고 마무리지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성폭력을 목격하고도 침묵했던 수많은 방관자가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들의 고백은 성폭력 피해자의 실명 폭로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방관자의 고백은 극단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 오동식 씨(46)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6)의 해명 기자회견 다음 날인 2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연희단거리패에서 있던 일들을 은폐하고 방관했다”고 털어놓으며 기자회견 사전 연출까지 폭로했다. 오 씨의 고백은 이 전 감독과 다른 문화예술계 인사를 둘러싼 추가 폭로에 영향을 미쳤다.

서울예술대 99학번 김모 씨도 23일 학교 SNS에 “선배들의 행동과 폭력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후배들에게 강요했던 제 자신을 반성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괴물은 절대로 혼자서 자랄 수 없다. 무관심이란 토양에서 암묵적 동의와 침묵의 카르텔이란 먹이를 먹고 자란다”며 “침묵하는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 후배들을 위해 반성하고 또 반성하겠다”고 자성했다.

한 예술대 출신 연극배우 B 씨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수많은 ‘방관자’의 심경을 전했다. 그는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당시 ‘나는 몰랐다’고 거짓말한 것이 지금 너무 괴롭고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배준우 기자 jjoonn@donga.com
#성추행#이윤택#미투#방관#양심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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