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신광영]‘생존 인증’ 동영상을 확보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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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기자
신광영 사회부 기자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김모 형사는 5일 카카오톡 답변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다. 출입국 기록상 일본에 있는 30대 여성에게 메시지를 보낸 지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경찰입니다. 지연이(가명) 보호자 되시죠?’

물음에 대한 답은 끝내 없었다. 김 형사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지연이가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안 나왔더군요. 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합니다.’

몇 분 뒤 답장이 왔다. 하지만 딱 네 글자. ‘잘 있어요.’

김 형사는 바로 답장했다.

‘말로는 안 되고 증명해 주셔야 합니다.’

초등학교 취학통지를 받고도 1월 예비소집에 불참한 아이들의 행방을 찾는 게 요즘 김 형사의 주 업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건 학대의 징조일 수 있다. 형사가 아이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면 사안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학교 측과 동주민센터가 주소지 등을 찾아봐도 행방이 묘연할 때 경찰로 공이 넘어온다.

지난달 서울 경찰로 아동의 소재 파악 요청이 온 22건 중 지연이는 마지막 ‘미확인’ 건이었다. 부모는 일본으로 출국했지만 지연이는 출국 기록이 없었다. 가끔 여권 영문이름에 오류가 있거나 이중국적자일 경우 출입국 기록이 검색되지 않는 때가 있다. 하지만 김 형사는 지연이의 실물 확인 없이 안심할 수 없었다.

예비소집 불출석은 어쩌면 아이가 보내는 간절한 구조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도록 외면했다. 불출석 아동 소재 파악은 지난해 비로소 시작됐다. 올해가 두 번째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집 가스배관을 타고 맨발로 탈출한 열한 살 A 양, 욕실에서 감금된 채 부모 학대로 숨진 일곱 살 원영이가 여론에 불을 지핀 결과였다. A 양은 학교에 2년째 장기결석했지만 아무도 살피는 이가 없었다.

김 형사가 일본으로 보내는 ‘카톡 노크’는 혹시 있을 수 있는 음지에 볕을 들이는 이를테면 ‘햇볕정책’이다. ‘잘 있다’는 말 외에 답이 없던 지연이 보호자에게 김 형사는 결국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아이의 현재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주십시오. 그게 없으면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지연이 보호자의 반응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렇게까지 하는지 몰랐네요. 곧 보낼게요.’

몇 시간 뒤 김 형사의 카톡으로 한 아이가 천진하게 웃는 사진과 집 거실을 뛰노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전달됐다. ‘아이와 함께 2월 말 귀국한다’는 메시지도 함께 왔다. 사진과 동영상 속 아이는 김 형사가 지연이 친인척을 통해 미리 확보한 얼굴 사진과 일치했다. 촬영 시각도 전송 직전이었다. 김 형사는 안도하며 답장했다.

‘2월 말 귀국하시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은 투표권도, 사회적 영향력도 없다. 그들의 절규는 집 담장을 넘기 힘들다. 아동을 위한 정의는 감금되어 있기 일쑤다. 아동보호제도는 아이들의 눈물과 죽음 뒤에야 고작 한발씩 나아간 슬픈 진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렵게 일궈낸 제도의 울림이 작지 않다. 2016년 경남 고성에서 일곱 살 친딸을 때리고 굶겨 숨지게 한 어머니와 부천에서 여중생 딸을 죽게 한 뒤 1년간 시신을 방치한 목사 아버지는 장기결석아동 전수조사 결과 세상에 드러났다. 지난해 고준희 양을 숨지게 한 부모 역시 비슷했다. 전국으로 확대되는 ‘위기아동 조기발견시스템’을 의식해 거짓 실종신고를 했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아이들에게 ‘잘 있느냐’고 묻는 어른들의 노크가 더욱 집요해져야 할 것 같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초등학교 예비소집#예비소집 불출석#아동 학대#생존 인증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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