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당신을 떠올리는 밤… 슬픔은 옅어지고 추억은 깊어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완서 작가 7주기 추모행사 열려

‘나를 닮은 목소리로 제 자식을 나무라고, 나를 닮아 잘 웃을 자식들이 문득 떠오를 에미의 흔적을 따뜻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산문 ‘내가 꿈꾸는 나의 죽음’에 쓴 글처럼 선생이 떠난 자리는 그랬다. 그 가슴 저민 꿈은 따뜻하게 완성된 것 같았다. 동아일보DB
‘나를 닮은 목소리로 제 자식을 나무라고, 나를 닮아 잘 웃을 자식들이 문득 떠오를 에미의 흔적을 따뜻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산문 ‘내가 꿈꾸는 나의 죽음’에 쓴 글처럼 선생이 떠난 자리는 그랬다. 그 가슴 저민 꿈은 따뜻하게 완성된 것 같았다. 동아일보DB
7년 전 이 무렵에도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복이 눈이 쌓여가던 그날, 당신을 따르던 많은 이들은 뜻하지 않은 부음을 접했다. 기억을 환기시키는 눈이 골목길마다 내려앉던 22일. 그들은 또다시 경기 구리시 아치울마을의 한 담녹색 대문 앞에 섰다.

‘어서 오시라.’ 소리 없이 인사를 건네듯 살며시 열린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으로 창이 난 소담한 ‘노란 집’이 나타났다. 박완서 선생(1931∼2011)이 1998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병석에서도 작품을 놓지 않았던 자택이다. 해질 녘 이곳에선 특별한 모임이 한창이었다. 선생의 7주기 기일을 맞은 추모행사였다. 해마다 가족은 이곳에서 가까운 지인, 문인들과 함께 모인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고인과 신앙의 동반자였던 조광호 신부, 이해인 수녀가 미사를 집전한다.

6시가 조금 넘었을까. 현관은 신발이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소설가 이경자 정이현 심윤경 씨, 시인 이병률 씨 등 아끼던 후배들, 염현숙 문학동네 대표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등 꼬박꼬박 이곳을 찾는 지인 40여 명이 어김없이 자리를 채웠다.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박완서 선생의 ‘노란 집’. 자택에는 선생의 집필 공간과 침실이 생전 그대로 보존돼 있다. 구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박완서 선생의 ‘노란 집’. 자택에는 선생의 집필 공간과 침실이 생전 그대로 보존돼 있다. 구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평소 선생이 집필실로 쓰던 공간엔 옹기종기 둘러앉아도 자리가 모자랐다. 침실로 쓰던 옆방까지 가득 찼다. 1988년 암으로 먼저 보낸 남편과 불의의 사고로 앞세워야 했던 아들 원태 씨의 사진이 여전히 협탁에 올려져 있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들이 떠난 길로 선생도 가신 지 7년. 하지만 그의 공간은 시간이 멈춘 듯 침대와 액자, 장식물까지 그대로였다. 첫째 딸이자 수필가인 호원숙 씨가 집필 공간과 침실 등을 변함없이 보존하고 있다.

조 신부는 미사에서 선생의 수필 ‘어른노릇 사람노릇’을 언급하며 “모두들 세상 가치에 휘둘리지 말고 신앙 가운데 제 몫을 하며 살아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차분한 미사가 끝나자, 노란 집은 명절 시골집처럼 왁자지껄해졌다. 후배 문인들이 오면 사랑방 역할을 했던 거실에 제사상이 차려졌다. 정 대표는 “선생님과 눈 맞추고 인사하는 것 같아 따뜻해지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모임은 선생의 네 딸이 손수 집에서 만든 음식으로 푸짐하게 차려졌다. 눈길을 끄는 건 포도주 무한 제공. 선생이 생전 담소를 나누며 마시는 와인을 그리도 좋아하셨단다. 참석자들도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씩 미소를 지었다.

담낭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선생은 문학상 후보에 올라온 후배들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챙겨 읽었다. 문학에 대해 치열하고 한결같았던 선생은 영화도 무척 아꼈다. “최신 영화도 다 챙겨 보실 정도로 애정이 많으셨어요.” 정 작가는 선생과 영화 얘기를 나누며 가까워졌단다. “배우 평가도 거침없었는데, 잘생긴 배우에 대한 편애가 심하셨다”는 이 시인의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심 작가는 “시간이 흐르니 슬픔이 옅어지고 대신 반가운 이들과 추억을 나눌 수 있으니 좋다”며 “이렇게 모여 앉아 웃으라고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자리 같다”고 말했다. 먼 길을 떠나셨건만 후배들을 한자리에 모아 웃게 하는 선생의 자취. 정을 나누게 하는 그 넉넉한 품은 한결같았다.

‘피는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대신 꽃을 피우는 대자연의 섭리의 일부가 될 테고, 육신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대신 무심한 바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옷깃을 스치게 될 터이다….”(‘내가 꿈꾸는 나의 죽음’에서)

늦은 밤 “꼭 어머니를 뵙고 가는 것 같다”고 인사하는 손님들에게 첫째 딸 호 작가는 마당까지 나와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자연으로, 바람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리라’던 생전 그 글처럼, 초승달 비치는 빈 뜰에 눈이 내려앉은 단아한 풍경이 당신의 미소와 닮은 것 같았다.
 
구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박완서 작가#박완서 7주기 추모행사#박완서 노란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