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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극한의 추위… 수면 위로 드러난 인간의 날선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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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극한의 추위… 수면 위로 드러난 인간의 날선 본성

손효림기자 입력 2018-01-20 03:00수정 2018-0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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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바다/이언 맥과이어 지음·정병선 옮김/424쪽·1만3800원·열린책들
물개를 먹는 북극곰. ‘얼어붙은 바다’에서 선원들은 털가죽을 갖기 위해 북극곰을 사냥하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동아일보DB
시작부터 독하다. 사내들은 술집에서 상스러운 욕설을 주고받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벽돌로 머리를 가격해 피가 뿜어져 나온다. 한 사내는 소년을 두들겨 팬 후 아무렇지 않게 성폭행한다.

1859년 영국에서 출발해 북극으로 고래잡이를 나간 포경선에 탄 두 남자 섬너와 드랙스를 중심으로 생존을 둘러싼 몸부림이 펼쳐진다. 전직 군의관인 섬너는 선박의, 원초적 욕구를 해결하는 데 도덕이나 법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드랙스는 작살수다. 선장 브라운리는 3년 전 난파 사고로 선원들이 죽거나 불구가 된 배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초반 항해는 순조롭다. 북극의 얼음을 뚫고 바다표범과 고래를 사냥한 뒤 칼로 배를 갈라 순식간에 지방층을 떼어내는 광경은 영상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연이어 사건이 터진다. 성폭행을 당하고도 범인에 대해 입을 다무는 사환 소년이 시체로 발견되며 선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배의 항해 목적은 따로 있었다. 고래잡이 수익이 줄어들자 선주 백스터가 막대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선장, 일등항해사와 짜고 사고로 위장해 배를 가라앉히기로 한 것. 그러나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소년의 죽음을 시작으로 선원들 간에 충돌이 벌어지고, 이내 살인으로 치닫는다.

피부를 새카맣게 얼려버리는 극한의 추위 속에 목숨을 부지하려 사투를 벌이는 사내들의 행동은 짐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짐승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다. 작가는 한계 상황에서 제어 장치 없이 터져 나오는 인간의 폭력성과 생존 본능을 치밀하게 써내려갔다. 휘몰아치듯 내달리는 전개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돌발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결말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눈을 떼기 어렵다.

책을 덮고 나면 찐득한 소금기에 전 사내들의 체취와 비릿한 피비린내가 한동안 코끝을 맴도는 듯하다. 긴 하드코어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고 할까. 인간이란 존재의 바닥 깊숙한 곳까지 현미경을 바짝 들이댄 소설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얼어붙은 바다#이언 맥과이어#정병선#추위#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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