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의 변화] 모팩 스튜디오, "파이프라인 효율, 소통으로 높인다"

  • 동아닷컴
  • 입력 2017년 12월 22일 09시 09분


코멘트
지난 2014년,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전세계에서 유명한 픽사가 그래픽제조사 엔비디아와 함께 '시그라프(SIGGRAPF)'에서 재미있는 발표를 진행했다. 당시 픽사는 '실시간으로 3D 랜더링을 작업할 수 있다'라는 내용으로 주목 받았다. 그리고 2016년, 픽사는 같은 시그라프 행사장에서 8,000만 폴리곤의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를 보여주며, 실시간 랜더링 작업을 시연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다양한 물고이의 눈과 코, 입, 눈썹, 지느러미 등 각각의 부위를 별도의 레이어로 처리하고, 색상이나 조명, 모듈 등을 최종 단계에서 바로 조절한 것. 마치 포토샵으로 제작물에 여러 레이어를 중첩해 다양한 효과를 구현하듯 손쉽게 변경하는 모습은 현장에서 찬사를 이끌었다.

최근 3D 업계의 주요 관심사는 4K, 8K 등으로 확연히 늘어난 해상도와 3D/VFX와 같은 CG, 실시간 랜더링, 보다 효율적인 작업 단계(파이프라인)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높은 해상도의 콘텐츠를 이전 방식보다 더 빠르고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한다. 특히, 3D 작업은 많은 인력과 높은 PC 자원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래 작업할수록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 단축'은 주요 관심사다.

< 픽사가 공개한 USD, 출처: 픽사 >
< 픽사가 공개한 USD, 출처: 픽사 >

픽사의 발표는 그래서 주목받았다. 픽사는 기존 3D 파이프라인과 다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빠르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어서 픽사는 발표 내용을 'USD(Universal Scene Description)'라고 명명한 뒤, 모두에게 공개했다. 더이상 3D/VFX를 작업할 때, 특정 툴에 끌려 다니지 말고, 더 쉽고, 더 편히라고, 더 빠르게 작업 프로세스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픽사는 현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특정 제작 프로그램만 집중해 사용하지 않는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각 소프트웨어로 제작한 여러 콘텐츠(모델링, 음영 처리, 애니메이션, 조명, FX, 랜더링 등)를 하나로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해 제작 시간을 줄였다.

이에 IT동아는 국내 3D 콘텐츠 제작 및 CG 전문 업체와 만나며 변화하고 있는 3D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디지털 아이디어와 스튜디오M, 2L IMAGEWORKS, 자이언트스텝, 덱스터 스튜디오에 이어 1994년만 영화 '귀천도'의 프리 프로덕션으로 참여하며, 지난 24년간 영화영상 시각효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모팩 스튜디오(이하 모팩)의 박영수 이사와 정병건 이사를 만났다. 모팩의 대표작으로는 최근 개봉해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강철비'부터 '화산고', '2009로스트메모리즈', '공동경비구역 JSA', 'YMCA야구단', '지구를 지켜라', '역도산', '형사', '야수', '무영검', '해운대', '7광구', '건축학개론', '내 아내의 모든것'. '만추', '용의자', '협녀', '돈의맛' 등 국내 영화와 '제7기사단', '워리어스웨이', '적인걸2', '서유기2', '몽키킹2', '태평륜2'. '기문둔갑', '차이니즈조디악' 등 해외 영화가 있다. 이외에도 '태왕사신기', '별에서 온 그대' 등 드라마 작품도 작업했다.

모팩, 국내 VFX 역사를 함께한 전문 스튜디오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먼저, 모팩은 어떤 회사인지 설명을 부탁한다.

박영수 이사(이하 박 이사):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에 사용하는 VFX, 그러니까 흔히 CG(Computer Graphics)라고 말하는 시각효과 전문 스튜디오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할리우드에 이르기까지 약 200편 이상의 영화와 드라마 작품에서 특수효과를 제작하고 있다. 국내 업계에서 가장 오래 활동했다. 업계에서 1세대라고 일컫는 장성호 대표가 2~3명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있다.개인적으로 모팩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서 시도하는 업체라고 말하고 싶다. 화산고부터 해운대, 역도산 등 당시에 최신 FX 기술을 도입해 화려한 영상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로 역도산의 경우, 전체 예산 5억 원을 투입한 작품이지만, 40%에 달하는 2억 원을 영상효과에 투자하기도 했다.

영화와 시각효과 제작사 중 최초로 편집팀, 매트 페인트팀(Matte Paint), FX팀, 기술개발팀(R&D)을 구성해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자체적으로 개발한 파이프라인 셋팅과 작업진행 관리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구축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작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모팩 스튜디오 박영수 이사와 정병건 이사(출처=IT동아)
모팩 스튜디오 박영수 이사와 정병건 이사(출처=IT동아)

정병건 이사(이하 정 이사): 영화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자체 IP를 활용한 애니메이션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TV 등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 해운대, 7광구 등을 통해 재난 영화 시각효과를 제작하면서 유체역학 관련 기술을 많이 확보했다. 7광구의 경우, 아쉽게도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웃음), 중국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7광구에 등장한 괴물과 활용한 시각효과의 유체역학 기술, 그러니까 물을 구현한 기술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서극, 오우삼 감독 등 중국의 유명 감독들과 인연을 맺는 계기로 이어졌다. 글쎄, 7광구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셈이다. 사실 7광구에 등장한 괴물, 업계에서는 크리처라고 부르는데,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한 것이었다. 준비를 상당히 오래해 캐릭터 세계관, 크리처 설정, 디자인 등을 다진 것이 좋은 평가로 이어진 것 같다.

IT동아: 중국 영화 시장이 성장하면서, 국내 스튜디오가 중국 작품을 상당수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

박 이사: 맞다. 자랑같지만, 우리가 직접 영업하지 않아도, 영화 제작사나 감독님들이 모팩으로 많이 찾아오신다(웃음). 업계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모팩이라는 회사 자체가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국내 스튜디오를 많이 찾는 이유는, 중국 영화의 트렌드와도 연관이 깊다. 국내에서는 괴물이나 환상 속의 동물 등이 등장하는, SF 판타지 장르를 많이 제작하지 않는다. 중국은 다르다. 용과 같은 고대 환상 속의 동물이 많이 등장하고, 서유기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 인기가 많아 특수효과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국내 보다 중국 영화 시장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제작 기간, 제작 비용 등도 차이가 난다. 국내 스튜디오들이 중국 작품에 많이 참여하는 이유다.

정 이사: 중국 유명 감독들이 국내 스튜디오의 기술력을 인정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품질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모팩 내에서 작품에 참여하는 비중도 중국 70%, 국내 30% 정도다. 그런데, 두 시장 모두 (스튜디오에) 바라는 것은 동일하다. 더 좋은 품질의 시각효과, 빠른 작업 속도를 원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시각효과는 제작하는 기간이 짧을수록 비용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웃음). 특히, 중국 감독들은 결과물을 막판에 많이 바꾸는 편이다. 마무리된 작업을 다시 수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에 클라이언트 성향에 맞춰서 빠르게 대응하고, 작업속도를 보다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파이프라인을 계속 개선해나가는 중이다.

파이프라인 효율화, 소통에서 찾는다

IT동아: 효율적인 파이프라인... 모두가 바라고 원하는 것 아닌가. 더 좋은 품질, 더 빠른 작업속도.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닌가.

정 이사: 하하. 그래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이다. 모팩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시스템도 있지만, 우수한 인력을 각 프로젝트(작품) 마다 연결해 높은 퀄리티를 확보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모팩에 합류한지는 이제 1달 반 정도 된다. 업계 경력은 20년이 넘는데, 주로 해외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참고로 그는 인터스텔라, 아바타, 토르2, 007 스카이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 등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작품을 다수 진행한 바 있다). 이에 헐리우드의 우수 인력을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연결해 그들의 경험치를 활용하고 있다. 시각효과, VFX 업계는 인력 수급이 제약적이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인력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어느 스튜디오가 마찬가지겠지만, 딱 스케쥴에 맞춰서 진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작품을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웃음). 아무래도 국내 인력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상당수다.

모팩 스튜디오 정병건 이사(출처=IT동아)
모팩 스튜디오 정병건 이사(출처=IT동아)

시각효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력의 경험치를 담보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박 이사: 파이프라인 효율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고민 중이다. 이전에 사용했던 데이터, 에셋 등을 라이브러리로 구축해 다시 활용하는 방법도 있고, 더 좋은 프로그램이나 고성능 랜더팜 등을 구축하는 것도 방안일 수 있다. 모팩은 이러한 방안들 이외에도 물리적인 제작 공정을 줄여나가기 위한 팀을 짜서 진행한다. 내부에서 스크럼(Scrum, 럭비에서 사소한 반칙이 일어났을 때 양 팀 선수들이 어깨를 맞대고 형성하는 집단을 뜻한다)이라고 한다.

기존 제작 방식은 이렇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먼저 핸들, 바퀴와 같은 부품을 만들고, 이걸 연결할 수 있는 뼈대를 만든 뒤에, 조립한 자동차를 움직이는 효과를 적용한다. 이 과정에서 색도 입혀야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조명 효과도 넣어야 한다. 모델링, 애니메이션, 라이팅 등이라고 말하는 과정이다. 문제는 한 단계 작업이 끝날 때 까지 다음 단계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만약 4단계로 작업한다고 할 경우, 1단계가 진행 중이면, 2, 3, 4 단계에 참여한 인력은 기다려야 한다. 최종 단계를 끝내도 작업은 끝나지 않는다. 만약, 클라이언트가 결과물을 받아서 수정을 요청한다면? 그리고 그 수정 사항이 1, 2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한다.

이에 모팩은 각 단계에서 팀원을 컨트롤할 수 있는 리드급이 모여 스크럼(TF)를 꾸린다. 그리고 동시에 작업을 진행한다. 팀원들은 각 단계에 필요한 세부 작업을 진행하고. 그렇게 결과물을 먼저 빨리 만들어낸 뒤, 클라이언트에게 먼저 보여주고, 수정할 부분을 빠르게 찾아 바로 적용한다. 문제점을 빨리 찾고, 빨리 수정하는 방식이다. 실패를 많이, 빠르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모팩 스튜디오 박영수 이사(출처=IT동아)
모팩 스튜디오 박영수 이사(출처=IT동아)

정 이사: 문제를 빨리 찾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물을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줬는데, "어? 내가 원한 건 남자인데, 왜 여자를 그려왔어요?"라는 경우도 있다(웃음). 특히, 특수효과로 구현하는 크리처는 모호한 것이 많다. 상상 속 동물, 상상 속 인물들 아닌가. 감독이 생각하는 서유기 속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와 완성된 결과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 기존 방식은 분업화에 가깝다. 각 단계마다 전문가는 양성할 수 있지만, 전체 과정을 아우르는 수석 아티스트, 참여 의식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마치 주어진 숙제를 끝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스크럼 방식을 도입했다. 일주일에 한번 단위로 모여서 결과물을 보고, 이를 클라이언트와 공유해야 리뷰하고, 수정할 부분을 찾아 빠르게 적용한다. 과거에는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슈퍼바이저가 세밀한 것까지 하나하나 신경써야 했지만, (어느 정도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구성원들이) 스크럼을 꾸려서 함께 고민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변화한 것이다. 과거 분업 과정에서 발생했던 소통의 문제점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고.

IT동아: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적용하는 방식. 작업량이 더 늘어날 것 같은데.

박 이사: 그렇지 않다. 뒷부분, 최종 단계에서 문제점이 발생하면, 이걸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된다. 그림을 그릴 때 스케치를 빠르게 고쳐가면서 채색해 모두가 원하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정리하면, 클라이언트와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자 파이프라인을 개선한 것이다. 문제가 발생할 위험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어디까지나 주어진 예상과 시간 내에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USD가 추구하는 바는 공감

IT동아: 효율적인 파이프라인, 클라이언트의 수정 사항을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것, 취합해보면 USD 작업 방식이 추구하는 것과 유사하다.

박 이사: 픽사가 공개한, 발표한 내용만 본다면, 확실히 매력적이다. 내부에서도 USD는 주의깊게 보고 있다. 만약 USD 방식이 보편화된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특히, 여러 데이터를 VFX뿐만 아니라 VR, AR, 게임 등 다른 콘텐츠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것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다만, 지금의 현실, 시장 상황을 살펴야 한다. 모팩과 같은, 나름의 대형 스튜디오는 특화된 시스템을 적용해 사용한다. 그게 해당 업체의 경쟁력이다. 때문에 USD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바로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작업 방식, 파이프라인에는 공감하지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정 이사: USD와 같은 작업 방식을 단계별로 적용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한번에 전체 시스템, 파이프라인을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마 지금 VFX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스튜디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기존 방식에 익숙한 작업 방식도 생각해야 한다. 모팩은 국내에 200명, 중국에 10명 정도 인원이 일한다. 이 많은 인원이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파이프라인에 적응하는 것도 해결해야 하고. 물론, USD가 추구하는 바는 업계 종사자로서 공감하고 있다.

IT동아: 모팩이 준비하는 다음은 무엇인지.

박 이사: VFX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다음 여러 방향 중에 자체 IP를 확보한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이다. 설국열차의 기차, 괴물의 괴물 등을 담당한 컨셉 디자이너 등이 합류해 작품을 준비 중이다. 영화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목표로 한다. 모팩은 국내 VFX 시장과 함께 성장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도 등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농담으로 모팩을 '사관학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함께 노력하고, 고생했던 인력이 다른 업체나 외부에서 능력을 인정 받기에 얻은 별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모팩에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동아닷컴 IT전문 권명관 기자 tornados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