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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韓中정상회담, 외교적 결례 당하고 건진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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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韓中정상회담, 외교적 결례 당하고 건진 건 없었다”

주간동아입력 2017-12-17 15:26수정 2017-12-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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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기자]
주재우 경희대 교수(중국어학부)는 12월 14일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이후 양국 정상이 만나 미래지향적 논의를 했다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회담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거 양국 정상이 합의했던 선언적 수준의 합의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방중 성패를 가늠할 외교 현안인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사드 봉인’을 원한 우리 정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발언 중 사드를 ‘모두가 아는 이유’라고 에둘러 말한 걸 평가하지만, 중국 측 자료를 보면 ‘사드의 철저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며 “중국의 외교적 결례 속에서 우리 대통령이 하루 한나절을 기다린 정상회담 결과치고는 미흡하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12월 14일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전쟁 불용 △한반도 비핵화 원칙 견지 △북한 비핵화 등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 △남북한 관계 개선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4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한중 산업협력 단지 조성이나 투자협력 기금 설치 같은 협력 사업을 재개하기로 하는 등 두 정상이 만나 양국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열었다는 점은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4가지 원칙’이라는 것은 새로운 내용처럼 발표됐지만 사실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과 중국이 늘 해오던 말이다. 다만 그러한 원칙을 세웠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력한다는 소조항이나 협력 방향이 나와야 하는데 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사드 문제에서도 청와대는 ‘사드는 언급했지만 10·31 합의에 대한 평가와 사드 문제에 관한 적절한 관리, 모멘텀 마련에 대한 말들이 오갔다’고 했지만, 중국 측 자료를 보면 시 주석은 ‘철저히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나온다. 청와대가 외교적 성과를 위해 시 주석의 사드 발언을 의도적으로 외면해선 안 된다. ‘3불(不) 합의’(사드 추가 배치도, 한미일 군사동맹도,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 참여도 없다)로 ‘사드 봉인’을 원했던 우리 외교력의 한계를 드러낸 거다. ‘3불 합의’가 대한민국 미래에 족쇄가 될 거라는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는 데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지만,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이나 원유 공급 중단 등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던 거 같다. 평창동계올림픽 참석과 관련해서도 과거 입장(진지하게 고려하되 참석이 어려우면 고위급 인사 파견)과 달라진 게 없다. ‘외교적 결례’ 논란 속에서 이뤄진 회담인데 결과는 그다지….”

국빈 방문이지만 외교 의전상 통상적이지 않았던 거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12월 13일 시 주석은 난징대학살 80주기 국가 추모 행사 참석차 난징으로 갔다. 우리는 서열 2위 리커창 총리와 오찬 면담을 추진했지만 늦은 오후 면담을 통보받았다. 사드 문제에 따른 의도적 결례일까.



“연기된 건지, 원래 그렇게 하려 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의도적이라고 본다. 13일 오전 11시 문 대통령이 베이징에 도착했는데 14일 오후까지 중국 정부와 공식행사가 없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상무위원들도 행사 참석차 난징으로 갔다는 게 이유인데, 한나절 동안 ‘벌을 세우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

왜 그렇게 보나.



“중국 정부와 청와대가 시 주석의 난징대학살 추모 행사 방문 일정을 몰랐을 리 없다. 이미 주중 한국대사를 포함한 외교사절단에게 초청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국 외교부는 12월 6일 문 대통령의 13~16일 방중 사실을 발표했다. 이는 중국 외교부-주중 한국대사관-청와대 간 소통이 안 돼 일정 조율이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초청받은 곳으로 갔지만 초청한 사람은 없어 우리 동포들과 만났다. 베이징보다 (15일 방문하는) 충칭을 먼저 방문하는 등 임기응변으로라도 일정을 조정했다면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직접 ‘행사에 가는 게 더 바람직한 것 아니냐’며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에게 추모 행사 참석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국가적 행사에 예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게 아닐까.



“당초 주상하이(上海) 총영사와 주베이징 대사관 공사참사관이 참석하려 했는데, 문 대통령의 뜻에 따라 밤사이 급하게 참석자가 바뀌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 대사(노영민 주중 한국대사)는 문 대통령을 홀로 남겨둔 채 행사 참석차 난징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우리는 중국의 국가적 행사에 예를 갖추는데, 관례적인 국빈 방문에 대한 예우는 왜 스스로 포기해야 하나. 13일 베이징서우두(首都)국제공항에 문 대통령을 마중 나온 사람은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부장조리로 차관보급이었고, 식사 대접도 의례적 국빈만찬 한 차례에 불과했다. 13일 저녁은 호텔에서, 14일 아침은 현지식당에서 노영민 주중대사와 식사를 했다. 사실상 국빈 방문인데 두 끼를 ‘혼밥’했다. 회담 당일 오찬도 하지 않은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러한 문제는 괜한 트집이 아니다. ‘완전한 (외교적) 결례’로 보는 이유다.”

이번 회담에는 사드 문제로 공동성명 채택과 공동기자회견이 없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공동선언을 발표하면 중국은 사드 문제를 넣자고 하고, 우리는 ‘10·31’ 합의 때 봉인하기로 했다는 의견인 만큼 서로 입장을 배려해 성명을 내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은 양자 정상회담의 꽃이다. 정책적 합의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공식 외교문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동성명 채택과 공동기자회견이 없다는 건 중국 측이 문 대통령의 방중을 국빈 방문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입증하는 거다. 이견이 대립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공동기자회견으로 대신 마무리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없다는 건 의아하다. 1994년 김영삼(YS) 전 대통령 방중 당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공동성명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베이징의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조어대)에서 각자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중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1975년 12월 당시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 대만 문제와 미·중 수교일자 확정 문제에 관한 이견으로 공동성명과 공동기자회견이 무산되자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일본, 필리핀 등 방문국을 추가해 국빈 방문을 ‘아시아 순방’으로 격을 낮췄다. 미국 대통령의 방중 역사에서 공동성명, 공동기자회견이 무산된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이었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이 망신당하지 않도록 그 방문의 격을 낮췄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Q정전’의 정신승리법

청와대는 오히려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서로의 입장을 배려한 지혜’라고 말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의전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회담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언사는 우리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종의 합리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가 잘못 인지하는 외교 개념을 바로 잡아야 할 학자들도 ‘의전이나 상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용적, 실리적 회담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는 점이다. 물론 회담 내용도 중요하지만 국빈 방문은 국빈 방문이다. 외교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외교 개념’을 왜곡해선 안 된다. 중국 소설가 루쉰의 ‘아Q정전’에 나오는 ‘정신승리법’처럼, ‘졌지만 정신은 내가 우월하므로 결과적으로 이긴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중국은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는 건데.



“12월 8일 청와대에서 이뤄진 중국 CCTV와 인터뷰에서 수이쥔이(水均益) 앵커는 ‘3불 합의’를 재확인받으려는 듯 ‘사드 문제에 관한 단계적 해결 방안으로 한국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물었다. 우리 대통령은 ‘사드는 방어 목적이고, 레이더 성능 때문에 중국 안보 이익을 침해할 우려에 관해 역지사지할 것’이라고 답했지만, 사실 수이 앵커의 질문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다른 뜻이 있었다?



“중국 외교에서 ‘단계적 합의’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일단 묻어두고 가자는 의미다. 그 말뜻을 이해했어야 한다. 과거 미·중 관계에서도 미국 측의 대만 무기 판매 문제를 두고 ‘단계적’으로 해결해가자고 합의했다.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파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중국도 잘 안다. 따라서 단계적 합의는 소통과 대화를 통해 서로 더 잘 이해하자는 의미로 두 나라 간 의지를 확인하고 결의를 보여달라는 뜻이었다. 그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니 수세적,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거 같다.”

주 교수는 미국 웨슬리언대(Wesleyan Univeristy)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중국 베이징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미·중 관계 전문가다. 9월 출간한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경인문화사)는 출간 2개월 만에 2쇄를 발행했다. 사드 문제도 북한의 직접적인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이지만,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란 G2 사이에서 적잖은 홍역을 치렀다. 따라서 미·중 관계사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12월 12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무조건적 대북 대화’ 제안에 백악관은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제동을 걸었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 태도를 바꿔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걸로 받아들인다.”

同盟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며 압박하고 있다. 미·중이 충돌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미·중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기 때문에 충돌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중이 소통하는 방식은 그 전에는 제3국이나 언론매체를 활용해왔고.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이후 직접 대화가 가능해졌는데, 1955~69년 문화대혁명 전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136회의 대사급 회담이 있었다. 79년 미·중 수교 이후에는 꾸준히 실무급 회담이 열렸다. 우리는 정상회담이나 장관급 회담을 하려 하지만 미·중 양국은 실무급 회담을 중시한다. 실무급 회담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관리’하면서 관계 악화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회담 실무자들이 성장해 정부 주요 자리에 오르면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우리의 대미, 대중 외교에 시사점이 될 만하다.”

어떤 점이 그런가.



“한중수교는 25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은 64년이 됐다. 한미동맹이 ‘환갑’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군사, 안보 쪽에만 치우쳐 있다. 반면 일본은 군사, 안보뿐 아니라 경제통상, 인문교류 등으로 동맹을 확장하는 등 어느 한 분야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사드 문제든, 북한 문제든, 한일 문제든 환갑이 지난 한미동맹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을 활용하라? 틸러슨 국무장관이 중국 측에 ‘사드 보복’ 우려를 전달한 것처럼 말인가(틸러슨 국무장관은 3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이 한국의 방어 시스템에 대해 보복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우리(미국)의 우려를 키우는 일’이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렇다. 한미동맹을 통해 우리 입장을 전달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경제가 어려우니 동맹국(미국) 시장을 더 개방해달라’고 요청하는 외교적 순발력도 필요하다. 한국도 한미동맹의 한 축인데 ‘보고만 있느냐’고 호소하면서 은밀하게 압박했어야 한다.”

한때 우리 정부는 사드 보복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카드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그 또한 주변국 지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왜 그런가.



“일본은 2010년, 그리고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 이후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에 대해 2012년 6월 WTO에 제소했고, 결국 2년 뒤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때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소송 전부터 여러 차례 일본에 힘을 실어줬고. 결국 함께 소송에 참여했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은 희토류 수입선을 다변화했고, 희토류가 필요 없는 전자제품을 개발하는 등 미래에 대비했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9월 13일 산업통상자원부가 ‘WTO 제소를 포함한 법리 검토를 하겠다’고 밝히니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다음 날 곧바로 ‘북 핵·미사일 도발로 중국과 협력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부인했다,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선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여전히 (WTO 제소는) 유효한 카드’라 하고…. 일관된 방향이나 원칙이 없는 데다, 주변국의 동의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시류만 좇아서는 ‘만만디(慢慢的)’ 중국에 당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2월 14일 중국 베이징의 현지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왼쪽).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조어대)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한반도 운전자론’ ‘균형외교’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 ‘균형외교’를 강조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는 원칙 말이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해보니 우리가 한반도 운명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 연장선상에서 ‘동북아 균형자론’ ‘운전자론’이 나오고 있고.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이 어떻게 성사됐는지 외부적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

외부적 상황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한다는 말인가.



“남북정상회담 전후인 1999~2000년은 북한 외교가 정점에 달했을 때다. 외교적으로도 가장 편하고 활동 공간도 넓었다. 1차 북핵 위기 당시(1994) 북한 영변 핵시설 정밀타격을 검토한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남북을 오가며 고위 인사를 두루 만났다. 이른바 ‘페리프로세스’(북한 미사일 발사 중지·미국의 대북제재 완화→북 핵·미사일 발사 중단→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및 평화체제 구축)라 부르는 강온 양면책을 구사했고, 2000년 10월엔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했다. 1999년 6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2000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각각 중국을 방문하면서 한중수교 이후 서운한 감정을 풀었고, 중국의 북한 원조도 재개됐다. 백남순 외무상은 EU 주요 회원국 외무상을 만났으며, 2000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남북한 모두 주변 4강과 관계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2000년과 비교하면 남북한 모두 주변국과 관계가 좋지 않다. 우리가 4강과 관계가 좋아야 북한과 4강 관계도 개선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국과는 사드 배치, 일본과는 역사 문제로 갈등하고 러시아와는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 북한 역시 4강 관계가 불편하니 움직이지 않고, 현재의 남한을 통해 주변 4강과 관계 개선을 하지 못하리라는 사실도 잘 안다. 우리가 그러한 ‘레버리지’(지렛대)가 있다면 균형외교를 할 수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 균형외교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건 요원해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여러 차례 평화메시지를 밝힌 바 있는데, 선언적 의미라 해도 지금은 평화메시지를 던질 때가 아니다.”

왜 그런가.



“북한은 협력과 개방의 장으로 나올 수 없는 유일 수령체제이고, 모든 나라에 개방할 생각도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과 협상용인 만큼 우리는 거기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미국은 (11월 22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국제사회가 연일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고 있는데 우리만 평화를 얘기하면 ‘코드’가 안 맞는다. 지금은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전술적으로 외교를 해야 한다.”

전략적 사고와 전술적 외교….



“그렇다.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꽃놀이패’를 쥐어야 하는데 그걸 못 한다. 우리 사회를 보면 각각 40% 정도가 미국, 중국과 협력을 반대한다. 일본과는 거의 100%가 반대하고, 러시아에는 무관심하다. 포커판에서 싫다고 해서, 반대한다고 해서 패를 다 버리면 우리는 판돈만 대고 돈을 딸 수 없다. 따라서 판세를 읽어야 하고, 판세를 읽으려면 주변 4강의 ‘먹이사슬’ 구조를 알아야 한다.”

먹이사슬 구조?



“누가 뭐라 해도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일본이다. 중국은 근대 들어 러시아(옛 소련) 등과 세 번 동맹조약을 맺었는데, 그 이유도 모두 일본 때문이었다. 미국이 주한미군, 주일미군의 주둔 명분으로 삼은 것도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었다. 아시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그 공백은 일본이 채울 거라고 주장하니 중국도 용인한다. 일본 처지에서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러시아다. 1972년 일본이 중국과 수교할 때, 핵심은 대만 인정 문제와 평화조약 체결이었다. 중·일 수교 후 일본이 대만과 단교해 대만 문제는 해결했지만 중국은 일본의 침략에 대한 공식 사죄를 요구하며 평화조약 체결을 미뤘다. 그때 일본은 소련과 관계 정상화에 나섰고, 북방영토(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인 쿠릴 4개 섬) 문제를 고리로 소련과 평화조약을 맺겠다고 했다.”

“4强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라”

그 또한 소련과 가까워지겠다는 일본의 포커페이스였나.



“그렇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모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일본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하자 중국이 적극 나서 중·일 평화조약이 맺어졌다. 사드 문제에서도 ‘일본 카드’를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우리도 대응해야 하는데, 중국이 나서주지 않으니 일본과 협력할 수밖에’라며 패를 흔드는 거다. 한일이 가까워지는 걸 중국은 두려워하는데 그 카드를 활용하지 못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번 방중 과정에서 난징대학살 80주기 추모 행사에 주중 대사를 보내고, 반인도적 전쟁범죄라고 규탄하면서 깊숙이 개입할 필요는 없었다.”

일본과는 위안부 같은 역사 문제와 일본의 우경화로 소원해진 거 같다.



“우리는 몰입이 빠르다. 한미동맹은 무조건 군사동맹이고, 한일 간 문제는 ‘기승전-역사’로 종결된다. 한일 정상회담을 해도 마찬가지다. 조금 서운하더라도 각자 입장을 표명하고 다른 문제로 넘어가는 이해와 관용이 필요하다. 국제관계에서 1%라도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면 활용하는 게 이익이다. 사드 추가 배치 안 한다며 ‘3불 합의’를 할 게 아니라, ‘북한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니 너희(중국)가 잘 관리해달라’고 당부하고, 중국이 (북한) 관리에 소홀하면 다시 얘기하면서 은근히 압박하고. 그런 카드를 우리가 먼저 버리는 게….”

평소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 주장에도 중국이 무덤덤한 이유는 뭔가.



“아무 말 안 하는 게 득이 되니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면 최소한 중국의 묵인이나 협조가 필요하다. 1964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을 때 미국은 중국 핵시설을 공격하려 했다. 이때 소련의 묵인이나 협조를 기대했지만 소련은 중·소 동맹을 들어 미국을 만류했다. 69년 중·소 국경분쟁 때는 반대로 소련이 중국의 핵시설 폭격을 원했지만, 미국은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을 우려해 반대했다. 이처럼 핵시설 타격은 주변국 협조가 관건이다. 북한과 중국도 동맹관계(조중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이고, 중국은 미국의 선제타격 의지에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억지력이 성공한다는 걸 경험했다. 더욱이 북한 타격 이후 미국이 ‘사후 계획’을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반응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북한의 패배를 전제로 한 ‘한반도 청사진’이 없고, 중국도 아직 그런 상황을 논의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베팅을 하고 싶지 않은 거다. 북한이 먼저 도발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하면 중국은 북한을 도와야 한다. 당연히 안 된다고 하겠지.”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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