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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의 마음의 지도]헤어짐의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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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의 마음의 지도]헤어짐의 진짜 이유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입력 2017-12-15 03:00수정 2017-12-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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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를 만납니다. 만난다고 모두 인연을 이어가지는 않지만 헤어짐을 전제로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헤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시작하는 관계도 있다고요? 환자와 정신분석가의 만남입니다. 분석적 만남은 환자의 요청으로 시작됩니다. 분석가는 일주일에 네 번, 한 번에 45분이나 50분,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지속되는 만남에 그 사람이 적절한지를, 분석이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인지를 처음 서너 번 만나면서 고심합니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긴 여행이 드디어 시작됩니다. 환자 역시 처음 만난 사람인 분석가가 여행의 동반자로서 ‘마음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인지, 여행 경비는 감당할 만한 수준인지 등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분석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미 이루어진 선택과 결정에 대한 갈등은 숨어서 환자를 괴롭힙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늘 양가적이어서 좋은 감정과 싫은 감정이 변덕을 부립니다. 극단적으로는 사랑과 미움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평생을 살아갈 배우자를 선택하면서도 갈등을 극복해야 하는 것처럼 이미 정해진 분석가를 만나는 환자의 마음도 여전히 복잡합니다. 제 교육 분석의 경우에는 명단에 있던 여러 분석가 중에서 제가 선택한 분이 제일 탁월하고 실력이 좋은지 아닌지에 대한 강박적 생각이 분석을 시작하고서도 한동안 마음을 후벼 팠습니다. 분석용 장의자인 카우치에 누워서 그런 생각을 꺼낼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하루는 불쑥 해버렸습니다. 약간의 어색한 침묵 후에 분석가는 저의 그런 생각의 실체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하시겠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개인 정보여서 생략합니다.


분석가의 입장에서도 이 환자를 잘 선택했는가, 아니면 정신치료 정도에 머물러야 했나, 약물치료를 같이 했어야 했나, 그도 저도 아니면 다른 분석가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의뢰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더 좋은 방법이었을까를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정신분석의 바다에는 평온하게 보이는 날조차 밑바닥에서 거친 파도가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준비 운동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 파도의 중심에는 환자가 분석가에게 나타내는 전이 현상과 분석가가 환자에게 보이는 역전이 현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대 정신분석의 요체는 그래서 전이와 역전이의 분석입니다.

세월이 흘러 분석이 종결될 시점이 다가옵니다. 종결이 이루어지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분석가와 환자가 미리 의논하고 준비해서 몇 달의 기간에 걸쳐 서서히 하는 겁니다. 환자는 원하지 않는데 분석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분석가가 보기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은데 환자가 고집해서 어쩔 수 없이 끝난다면 진정한 의미의 종결이 아니고 분석의 일방적 중단으로 보아야 합니다.

분석의 성공적 종결은 환자가 분석가를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마음에 분석가의 표상이 견고하게 새겨져 있어 살아가면서 스스로 자신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는 의미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처 충분히 분석되지 않은 문제들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마음에 떠다니며 환자의 삶을 힘들게 할 겁니다.

환자가 분석가를 일찍 떠나려 하는 이유에는 물론 현실의 상황이 작용합니다. 우선 먼 곳으로 직장을 옮겨야 하는 경우를 이야기해 봅시다. 환자는 직장을 다녀야 월급이 나오고 월급은 생존에 필수적이니 어느 누구도 말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분석의 중단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하고 끝나면 분석이 아닙니다. 환자와 분석가 모두가 왜 이 시점에서 그런 불가피한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현실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분석가와 너무 정신적으로 가까워져서 영원히 의존하게 될 것에 대한 환자의 두려움이 직장을 옮기는 형태로 가려진 도피 행위로 나타난 것일까? 외국 유학이나 심지어 임신으로 인해 분석이 중단되는 경우에도 비슷한 동기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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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의 종결이나 중단은 분석의 시작을 보면 어느 정도 예측됩니다. 부모와 심한 갈등으로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일이 삶의 지향점이었던 사람이 있다면 그가, 그녀가 분석을 받으면서 부모 대신으로 여기게 된 분석가를 언젠가 떠나는 모습도 부모와의 사이에서 쌓인 갈등이 스며든 복사본이기 쉽습니다. 그러니 분석의 종결이나 중단을 요구하는 환자의 이야기를 분석하면 환자의 갈등 구조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작을 보면 끝이 보이고 끝을 보면 시작이 보입니다.

분석을 중단해야만 하는 이유로 환자가 제시한 현실을 너무 쉽게 빨리 분석가가 받아들인다면 그 마음에는 어떤 동기가 숨어 있을까요? 쉽게 말하면 ‘울고 싶은데 뺨 때리니 고맙다’는 마음일 겁니다. 분석가가 무의식적으로 느낀 부정적 역전이가 분석을 중단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고 어렵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분석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 분석가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엄청납니다. 그런데 마침(?) 분석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환자가 주장하니 분석가는 자신도 모르게 박자를 맞추어서 중단에 동의하는 겁니다.

제대로 된 분석이라면 중단의 현실적 이유와 중단 자체가 아닌, 환자가 말을 꺼내고 분석가가 동의하려는 마음의 흐름을 분석해야 합니다. 거기에 분석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분석의 중단이나 지속은 순리에 맡기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분석 중단이라는 문제가 생긴 동기와 과정을 탐색하고 이해하는 겁니다.

헤어짐은 환자와 분석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독점적 현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도 수없이 만났다가 헤어집니다. 헤어짐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유와 속에 숨어 있는 이유가 다르기 마련입니다. 분석은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관계 중단의 위기가 왔을 때 겉이 아닌 속에 숨어 있는 이유, 그 사람의 이유와 나의 이유를 골고루 찾아서 이해해야 앙금이 덜 남습니다. 어느 부부가 헤어지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 떠오릅니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 그 말의 속뜻은 감히 짐작도 못 하겠습니다. 만남은 열정으로 시작되지만 헤어짐은 의문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헤어짐이 늘 더 어렵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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