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병 수술 다음날… 그는 식당서도 수술모자를 벗지 않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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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병 의식 회복]긴박했던 열흘간 지켜본 이국종 교수
가운 주머니에 논문자료 구겨넣고, 단백질 위주 식사… 절반은 남겨
직원 “환자것보다 못한 침대서 밤새”… 헬기기장 “비행중에 메스 드는 사람”

“아침 먹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당연히 첫 끼죠.”

3G 블랙베리 스마트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이 교수는 2013년형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여전히 쓰고 있다.
3G 블랙베리 스마트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이 교수는 2013년형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여전히 쓰고 있다.
이국종 교수가 식탁 앞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 16일 낮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구내식당. 전날 북한 귀순병사의 2차 수술을 집도한 이 교수는 여전히 파란색 수술 모자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가운 왼쪽 주머니에는 진찰용 막대와 청진기, 펜이, 오른쪽 주머니에는 논문자료 몇 장이 구겨진 채 꽂혀 있었다.

테이프 붙인 손목시계 이 교수는 수술에 방해될까봐 손목시계 밴드와 버클 부분을 의료용 테이프로 감아놓았다.
테이프 붙인 손목시계 이 교수는 수술에 방해될까봐 손목시계 밴드와 버클 부분을 의료용 테이프로 감아놓았다.
그는 쉬지 않고 음식을 입에 넣었다. 주로 고기와 계란 프라이에 손이 갔다. 함께 식사하던 간호사가 “체력을 보충하려면 (단백질 중심으로) 먹어야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왼쪽 손목에 전자시계를 차고 있었다. 검은색 전자시계 끝부분에 흰 의료용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민감한 외과수술에 방해될까 시곗줄 끝을 고정한 것이다. 그때 한 간호사가 달려와 귓속말을 하자 이 교수는 숟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절반 넘게 밥이 남아 있었다.

이 교수는 이날 아주대병원 별관에서 열린 ‘아주외상학술대회’를 주재하면서도 수시로 자리를 떴다. 병실을 드나들며 환자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그는 “행사 도중 환자 병실에 갈 일이 많아 굳이 외부에서 행사를 열지 않는다”고 말했다.


13일 북한 병사가 후송되고 22일 공식 브리핑 전까지 이 교수는 2차례 기자들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한 것 외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외상센터 내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이어갔다. 평소 이 교수의 생활과 다를 바 없었다. 병원 안팎의 사람들 눈에는 그저 늘 지켜봤던 이 교수였다.

“아이고, 내 아들 방이 이 모양이면 그냥 안 놔두지…. 침대가 환자 것보다 못해요.”

19일 외상센터 5층. 10㎡ 남짓한 이 교수 사무실을 청소하고 나오던 권모 씨가 혀를 차며 말했다. 권 씨가 본 이 교수 책상 위에는 의학서적과 논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책상 옆 간이침대에는 여름용 얇은 홑이불이 깔려 있었다.

단추 떨어진 가운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여주듯 이 교수가 세탁실에 맡긴 진료가운에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다.
단추 떨어진 가운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여주듯 이 교수가 세탁실에 맡긴 진료가운에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다.
아주대병원 지하 1층 세탁실. 이 교수의 가운이 걸려 있었다. 한 세탁실 직원이 떨어진 단추를 달고 있었다. 그는 “(교수님이) 완벽해 보이지만 수건 얻으러 올 때는 멋쩍어한다. 인상은 날카로운데 말끝마다 ‘부탁합니다’를 붙여 존댓말을 한다”고 말했다. 시설물을 관리하는 한 직원은 이 교수에 대해 “수시로 엘리베이터를 세우는 지독한 원칙주의자”라고 말했다. 외상센터 설립 초기 헬기로 이송한 환자를 응급실로 옮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며 이 교수는 2대뿐인 화물용 엘리베이터 중 1대를 계속 정지시켰다고 한다.

21일 외상센터 5층 화장실에서 이 교수를 다시 만났다. 그는 같은 층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 때문에 잠시 수술실 바깥으로 나왔다. 이 교수는 기자를 보자마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나가라”며 기자에게 ‘퇴로’를 알려줬다. 평소 기자들 질문에 답변을 피하지 않는 그지만 북한 병사가 이송된 이후 병원, 군, 정보당국에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교수와 외상센터 설립을 위해 14년 전부터 합심해온 허윤정 교수(아주대 의대)는 “집이 유복한 것도 아니고,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닌 이 교수가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인 외상외과 교수가 된 건 우연이자 숙명이었던 것 같다”며 “언어도, 사람 관계에도 거칠지만 환자에게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는 의사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도 이 교수는 헬기를 타고 충남 서산을 다녀왔다. 50대 교통사고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서다. 헬기 조종간을 잡았던 이세형 기장은 “파일럿 생활 20년 동안 이런 의사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 기장은 “심정지 상태의 환자를 태우면 이 교수가 헬기 안에서 환자 가슴을 열고 심장 마사지를 한다. 의료진 손이 느리면 버럭 소리를 지른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집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기장은 연평도 포격 직후 헬기에 탔던 이 교수의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전쟁 나서 병사 구하러 나갔다 죽으면 어디 작은 비석 하나 세워지면 그만이죠.”

수원=최지선 aurinko@donga.com·신규진 기자
#귀순병#이국종#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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