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십시일반’ 고학생 등불이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고려대 ‘KU PRIDE CLUB’ 감사의 밤 행사 열려

2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KU PRIDE CLUB’ 장학증서 수여식에 참가한 장학금 기부자와 장학생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종이비행기에는 기부자에 대한 감사 메시지와 함께 앞으로 사회공헌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김재명 기자 wanted@donga.com
2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KU PRIDE CLUB’ 장학증서 수여식에 참가한 장학금 기부자와 장학생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종이비행기에는 기부자에 대한 감사 메시지와 함께 앞으로 사회공헌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김재명 기자 wanted@donga.com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한 달 생활비 절반을 보태주신 격이죠. 감사할 뿐입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고려대 3학년 서모 씨(25)는 ‘KU PRIDE CLUB(고려대 프라이드 클럽)’ 장학생이다. 두 달 전 학교 홈페이지에서 본 모집공고는 가뭄의 단비처럼 다가왔다. 한 달 생활비 40만 원으로는 학교 식당에서 밥 먹고 공부하며 휴대전화 요금까지 내기에는 벅찼다. 내년 나머지 두 과목만 합격하면 꿈꾸던 회계사가 되는데 ‘막판 스퍼트’를 할 여력이 달렸다. 그런 서 씨에게 꼭 필요한 장학금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집안이 기울었다. 최근까지 부모님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군에 가기 전에는 인형탈 쓰기나 택배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제 장학생이 된 서 씨는 다음 달부터 한 달에 20만 원을 지원받는다. 서 씨는 “많지는 않지만 목표에 한 발짝 다가가기에는 충분하다.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면 큰돈이 아니더라도 후배들을 꼭 돕겠다”며 웃었다.

고려대 프라이드클럽은 소액 정기 기부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고려대가 2015년 5월 시작했다. 작은 돈이라도 꾸준히 내면 필요한 학생을 도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월 1만 원씩 기부하는 회원이 약 3500명이다. 대부분 교직원과 졸업한 동문들이지만 학교 주변 소상공인이나 일반 시민도 동참했다. 누적 기부금이 33억 원을 넘었다.

올 1학기까지는 형편이 되지 않아 교환학생으로 가지 못하는 학생에게 1000만 원을 지원하는 교환학생 장학금으로 주로 썼다. 2학기부터는 월 20만 원씩 6개월간 지급하는 ‘생활비 장학금’을 도입했다. 학생 450여 명이 혜택을 받았다. 내년부터는 성적 제한을 없애고 인원도 약 550명으로 늘린다.

학교의 취지에 공감한 동문 유명인사들도 기부 행렬에 함께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평생회원으로 가입했고, 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도 기부금을 내고 있다. 고려대 73학번인 박모 씨(64)는 파산한 뒤에도 자신의 연금 계좌에서 매달 1만 원을 보내고 있다.

고려대는 21일 오후 6시 반 학교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이들 기부자와 장학생이 서로 처음 만나는 ‘감사의 밤’ 행사를 열었다. 유병현 고려대 기금기획본부장은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는 염재호 고려대 총장, 이학수 교우회장, 기부자와 장학생 등 350여 명이 참석했다. 장학증서를 받은 생활비 장학생 1기 대표 2명이 ‘나눔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으로 보답하겠다’는 서약이 담긴 현판을 염 총장 등에게 전달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장학생 공동 대표 정모 씨(21·영어영문과)는 “수천 명의 마음이 모인 장학금을 받게 돼 더 벅차다”고 말했다.

염 총장은 “방학마다 편의점이나 공사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학생들 사연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학생들이 언젠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고려대 ku pride club#1만원 십시일반#고려대 프라이드클럽은 소액 정기 기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