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트럼프의 핵가방과 ‘명령 거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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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소련이 쿠바에 장거리 공격용 미사일기지를 건설하려 하자 미소(美蘇) 양국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휩싸였다. 10월 27일 아침 소련과의 핵전쟁을 눈앞에 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머릿속에선 화재와 독극물, 혼돈과 재앙으로 파괴된 지구의 처참한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케네디와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간의 갈등을 기록한 ‘0시 1분 전’(One Minute to Midnight)의 저자 마이클 돕스는 당시 케네디의 번민을 시간대별로 전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 중위로 태평양에서 어뢰정을 지휘한 케네디가 체험한 전쟁은 백악관이나 펜타곤에서 바라본 것과 달랐다. 일본 군인들은 일본제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했지만 미군 병사들은 살아남으려 기를 쓰는 게 역력했다는 점을 느꼈다. 케네디는 또 1962년 초 역사가 바버라 터크먼이 펴낸 1차 세계대전 기록서 ‘8월의 포성’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전쟁 후 독일의 후임 총리가 전임 총리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고 따지자 전임 총리는 “아, 이럴 줄 그때 알았다면…”이라며 후회했다는 것이다. 케네디는 이 책과 자신의 경험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찾았다.

▷미국 대통령의 핵 공격 암호는 ‘풋볼(the Football)’이라 불리는 검은색 서류가방에 담겨 있다. 무게 20kg인 가방엔 핵 공격 옵션 매뉴얼과 대통령 진위 식별카드, 핵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통신장치가 들어 있다. 대통령 승인이 떨어지면 곧바로 몬태나주와 노스다코타주 북부 평원에 있는 사일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다. 적의 핵 공격 보고 후 대통령이 보복을 결정하는 시간은 불과 4분 남짓밖에 안 된다.

▷존 하이튼 미 전략사령관이 18일 “위법적이라고 판단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핵 공격 지시를 받더라도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즉흥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가 마치 트윗을 날리듯 선제적 핵 공격을 명령했을 경우 예상되는 지구적 재앙을 막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지만 매일 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북한”이라면서도 위법한 공격 명령은 수행할 수 없다는 하이튼의 말에서 55년 전 케네디의 고민이 엿보인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핵전쟁#2차 세계대전#the football#트럼프#존 하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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