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묻지마 투자, 17년전 IT버블 떠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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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바이오-제약주’ 과열 경고음

항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 벤처기업 신라젠은 지난해 12월 코스닥에 입성했다. 신라젠은 2012년 이후 올해 3분기(7∼9월)까지 영업이익은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허가받은 의약품이 없어 매출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구개발(R&D)비만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년 적자기업인 신라젠의 시가총액은 17일 종가 기준 6조5200억 원으로 코스닥 3위다. 코스피로 따지면 시총 50위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2500억 원을 넘는 CJ, 국내 굴지의 제약사인 한미약품보다도 크다. 17일 신라젠 주가는 9만8000원으로, 1만5000원이었던 공모가 대비 6.5배로 뛰었다.

최근 코스닥 시장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바이오·제약 종목의 시가총액이 급팽창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2000년대 정보기술(IT) 버블을 잇는 ‘바이오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시장 대장주인 셀트리온의 17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26조8000억 원에 이른다. 코스피 종목과 비교하면 삼성생명(시총 27조 원)의 바로 뒤를 잇는 시총 8위 규모이고, 삼성물산(26조6500억 원)이나 네이버(26조5350억 원)보다도 많다. 신라젠을 비롯해 이달 상장한 티슈진이나 바이로메드, 메디톡스 등 다른 코스닥 바이오주의 시총도 웬만한 코스피 대형 종목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기업 실적에 비해 주가가 폭등하다 보니 바이오·제약 종목의 주가수익비율(PER)도 지나치게 상승했다. PER는 특정 회사의 주식 가격을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것으로 PER가 높을수록 주식이 고평가됐다는 뜻이다. 바이로메드의 PER는 4538배, 코미팜은 7820배에 이른다. 반면 코스피 대형주 중에서는 PER가 100을 넘는 종목도 매우 드문 편이다. 삼성전자의 PER는 20.41배에 그친다.

증권업계 일각에선 코스닥을 이끄는 바이오·제약주의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바이오·제약 산업 지원 방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어 관련 업종 주가가 정책 수혜를 계속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최근 일부 주식은 급등 양상이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때와 닮았다는 경고가 나온다. 2000년 IT 산업 성장기와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이 맞물리면서 코스닥지수는 2,80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내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폭락했고 지수는 300 선까지 주저앉았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바이오·제약주의 상승세는 상식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심각한 버블”이라며 “투자자들도 바이오·제약 업종의 경우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투자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워 시장을 떠도는 거짓 정보에 현혹되기 쉽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증권사의 투자 리포트들이 코스피에 집중된 상황에서 이들 종목에 대한 분석 보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터넷 주식 투자 게시판에는 특정 업체가 개발 중인 치료제가 임상시험에 성공만 하면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등의 ‘정보’가 넘쳐나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만한 정보는 매우 드문 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최근 코스닥지수 상승은 정부의 정책 의지를 감안해도 지나치게 가파르다”며 “급하게 오르면 부작용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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