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초상화, 증명사진 같아 단절된 느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국내 리더 500명 초상화 그린 이원희 前계명대 교수 개인展

이원희 작가가 그린 초상화들. 김태길 전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배우 고두심 씨,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왼쪽 사진부터). 이 작가는 “초상화는 사실성뿐 아니라 정신적 내면까지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노화랑 제공
이원희 작가가 그린 초상화들. 김태길 전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배우 고두심 씨,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왼쪽 사진부터). 이 작가는 “초상화는 사실성뿐 아니라 정신적 내면까지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노화랑 제공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본부 집무실에서 지구본 위에 손을 얹은 채 웃고 있다. 그의 서가에는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이 선물했다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국내 초상화 대가’로 통하는 이원희 전 계명대 회화과 교수(61·사진)가 그린 반 전 총장의 초상화다. 이 그림은 지난해 12월 유엔본부 1층 로비에 걸렸다. 작가는 올해 거의 같은 그림을 그려 서울 종로구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이원희’ 전시(다음 달 4일까지)에 내걸었다.》
 

김영삼 박근혜 전 대통령, 이용훈 전 대법원장, 김재순 이만섭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 등 우리 시대 오피니언 리더 500여 명의 초상화를 그려온 작가를 23일 만났다. 이번에는 서기석 헌법재판관, 배우 고두심 씨 등 15명의 초상화가 전시되고 있다.

―언제 처음 초상화를 그렸나.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1989년 부회장 시절에 소개받아 그렸다. 무척 만족해하더니 아버지인 구자경 회장의 초상화를 먼저 그려 드리고 난 뒤에야 자신의 그림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전신 초상화를 부탁받았는데 내 실력이 그만큼 안 돼 포기했다. 당시 그걸 그렸으면 대구에 중형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초상화를 배웠나.

“계명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90년부터 알음알음 초상화 주문이 들어오기에 프랑스 파리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며 독학했다.”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은….

“대상 인물을 만나 스냅사진 100∼200장을 찍는다. 조명 없이 스냅사진으로 찍어야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온다. 웃을 수 있는 대화를 끌어내는 게 관건이다. 모니터에 띄워놓고 최적의 사진을 고른 뒤 그걸 보며 그린다. 앉혀 놓고 그리기엔 대부분 너무 바쁜 분들이다.”

―정치인들을 그리게 된 계기는….

“나와 일하던 샘터화랑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 샘터사옥에 세 들어 있던 때, 마침 김재순 국회의장(샘터 창립자)이 초상화를 필요로 했다. 그때부터 죽 연결이 됐다.”

―전직 대통령들도 직접 만났나.

“만나야 그린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1997년에 45분 독대하고 나왔더니 당시 어느 청와대 수석이 ‘대통령의 안기부장 독대 시간이 얼마인 줄 알아요? 30분이에요’라고 했다.”

―그때 어떤 대화를 나눴나.

“내가 대학교수라고 하니까 대뜸 YS가 ‘내가 문리대 다닐 때 말이야. 맨날 친구들 술 사주느라 시계가 남아나는 일이 없었어. 전당포에 잡히느라…’고 했다. 당시 아들 김현철 씨가 구속될 때였는데 전혀 그런 내색이 없었다. 안색이 아기처럼 맑았는데 퇴임 얼마 후 보니 확 나빠졌다. 일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 같다.”

―대통령 초상화를 그리며 느낀 점은….

“청와대에 걸려 있는 전직 대통령의 초상화들은 15호 크기(가로 53cm, 세로 65cm)로 증명사진 같아 역사적으로 단절된 느낌이다. 역사적 장면과 대통령을 함께 그리는 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초상화 작업의 매력과 고충은….

“모든 예술의 주제인 인간을 그리는 것이 초상화의 매력이다. 그런데 사실성뿐 아니라 정신적 내면까지 담아내야 한다. 그게 힘들다.”

―요즘 국내에서 초상화 전시를 많이 볼 수 없다.

“초상화야말로 미술의 기본인데 국내에서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홀대받는다. 영국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30년째 ‘BP 포트레이트 어워드’를 열어 작가들을 지원한다. 조성진 김연아가 우뚝 선 것도 공정한 콘테스트 덕분이다. 우리 미술계에 지금 필요한 것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원희#이원희 초상화#이원희 개인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