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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만에 광주교도소 5·18암매장 발굴 이끌어낸 3공수 양심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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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만에 광주교도소 5·18암매장 발굴 이끌어낸 3공수 양심고백

뉴시스입력 2017-10-23 15:06수정 2017-10-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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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이후 37년 만에 이뤄지는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발굴 조사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의 양심 고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5·18기념재단은 23일 오전 재단 시민사랑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옛 광주교도소의 암매장 추정 장소에 대한 발굴 조사 일정과 암매장 추정 근거를 공개했다.

발굴 조사는 법무부와 협의를 거쳐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오는 30일부터 시작된다. 광주교도소에서 암매장 발굴 작업이 이뤄지는 것은 80년 이후 37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5·18 당시 3공수 대원들의 증언과 기록이 암매장 발굴 조사를 가능케 했다.

3공수여단 본대대장이었던 김모 소령은 1995년 5월29일 서울지검 조사에서 ‘교도소 담장에서 3m 정도 이격해 매장했다’, ‘잡초가 우거졌고 논과 밭, 그리고 500m 전방에 낮은 능선이 있다’, ‘관을 사용하지 않았고 가마니로 시신 2구씩 덮고 묻었다’, ‘5월23일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3명을 포함해 12구의 시체를 매장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으며 약도까지 첨부했다.


재단은 김 소령의 진술과 그가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이번 발굴 조사의 장소를 특정했다.

교도소 북측 담장 바깥쪽 전체 300m 중 폭 3~5m, 길이 117m 구간이다. 80년 5월 당시 공수부대의 순찰로 인근 부지로 일부는 농장으로 사용했으며 3공수여단 16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최근 들어 3공수 대원들의 양심고백도 이어졌다.

5·18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제3공수 15대대의 김모 하사는 지난 9월19일 재단에 직접 암매장 정보를 제보했다.

그는 ‘부대원과 함께 고속도로를 오가는 차량을 향해 조준 사격을 했고, 전복된 차 안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하루 정도 방치했다. 암매장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방치된 시신에서 악취가 나서 5~7구를 가매장했다’고 기념재단에 제보했다.

제보에는 ‘관이 없어서 그냥 묻었다. 신분증을 가슴에 놓고 (묻어)나중에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김 하사는 당시 시신 매장을 15대대장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재단의 현장 조사에도 참여해 구체적인 장소를 짚기도 했다. 김 하사는 “5·18 이후 이곳에 처음으로 왔다”며 “모든 걸 이야기해서 마음이 후련하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3공수 제11대대 소속 이모씨도 비슷한 내용을 증언했다. 이씨는 “교도소장 관사 인근 쪽에 8명을 직접 묻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1989년 1월 이 같은 내용을 제보했고 실제 발굴 작업까지 이어졌지만 유해는 발굴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같은 해 1월 ‘511분석반’이 작성한 ‘광주교도소 사체 암매장 신고상황 종합 검토보고’라는 군 문건에는 ‘교도소 연행자 중 사망자를 계엄군이 구내에 가매장했다가 철수 이후 교도소 측에서 발굴 처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내렸다.

실제 이씨가 증언한 ‘관사 앞’은 계엄군이 철수한 직후인 1980년 5월30일 땅에 묻혀 있던 8구의 시신이 수습됐던 곳이다.

기념재단은 조만간 이씨와 함께 옛 광주교도소를 찾아 다시 한번 암매장 추정 장소를 좁혀나간 뒤 발굴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김 하사가 증언한 곳과 이씨가 직접 묻었다는 곳이, 예전 시신을 수습했던 곳과 일치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것”이라며 “당시 가해자들의 직접적인 양심 고백인 만큼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추가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암매장 발굴 장소를 좁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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