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경유 빼고 남은 기름에서 ‘황금알’ 찾은 SK루브리컨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SK루브리컨츠, ‘잔사유’ 활용한 윤활기유 시장서 글로벌 강자로 떠올라

SK루브리컨츠는 2011년 스페인 최대 액화석유가스(LPG) 공급회사인 렙솔과 제휴해 스페인 카르타헤나에 공장을 세웠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으며 하루 1만3300배럴의 윤활기유가 생산된다. SK루브리컨츠 제공
SK루브리컨츠는 2011년 스페인 최대 액화석유가스(LPG) 공급회사인 렙솔과 제휴해 스페인 카르타헤나에 공장을 세웠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으며 하루 1만3300배럴의 윤활기유가 생산된다. SK루브리컨츠 제공
원유에서 뽑아내는 제품으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휘발유지만 최근 새로운 알짜 상품으로 떠오르는 게 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등유, 경유 등을 생산하고 남은 잔사유를 활용해 만드는 윤활기유다. 특히 고급 자동차에 넣는 윤활유의 원재료인 고급 윤활기유 시장을 주목할 만하다. 신흥시장에서 고급차 수요가 늘어나고, 유럽에서 환경 기준이 강화되면서 시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윤활유 ‘지크(ZIC)’로 잘 알려진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루브리컨츠는 윤활기유 시장에서 단연 돋보인다. 이 회사는 전체 윤활기유 시장에서 세계 4위, 고급 윤활기유 시장에서 세계 1위의 성과를 내고 있다.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SK루브리컨츠는 올해 매출 3조1690억 원, 영업이익 5130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13년 1550억 원이던 영업이익이 4년 새 3배 이상으로 수직 상승한 점이 눈에 띈다. 한동안 유가 하락으로 정유 관련업체들이 모두 흔들릴 때도 적극적으로 선제 투자를 한 덕분에 이뤄낸 결과다. 2009년 SK에너지에서 독립한 SK루브리컨츠는 이제는 단순한 계열사가 아니라 SK그룹의 해외 진출을 이끄는 주역 중 한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자투리 자원 활용에서 주력 상품으로

SK루브리컨츠의 주력 제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윤활기유와 윤활기유에 첨가제를 넣어 만든 윤활유다. 사실 두 제품은 원래 잔사유를 활용한 자투리 상품이었다. 쓰고 남은 자원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얻는 수입이었던 셈이다. 생산량도 적고 수요도 많지 않다 보니 판매도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1995년 SK루브리컨츠가 독자적인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고급 자동차용 윤활유에 들어가는 윤활기유인 ‘유베이스(YUBASE)’를 개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SK루브리컨츠는 유베이스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을 노리기로 결심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당시만 해도 산업용이나 선박유에 쓰는 저급과 중급 윤활유 시장이 훨씬 더 컸다. 환경이나 차량 연비에 대한 인식이 낮아 고급 윤활유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SK루브리컨츠는 가능성을 봤다.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신흥국 경제 성장과 유럽의 환경 규제 강화 등으로 고급 윤활유 시장이 계속해서 확대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또 전 세계에서 고급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적어 시장 선점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SK루브리컨츠의 예상은 적중했다. 업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고급 윤활유 시장은 매해 빠르게 성장했다.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현재 고급 윤활유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중 35%가 SK루브리컨츠의 유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향후 전망도 밝다. 업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5년간 고급자동차용 윤활기유 글로벌 시장은 연간 8.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글로벌 파트너링으로 공격적 생산 확대


해외 판로를 개척한 기쁨도 잠시, 2000년대 초 새로운 과제가 등장했다. 시장 성장 속도에 공급량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산 설비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당장 원재료인 잔사유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SK루브리컨츠가 찾아낸 해법은 ‘글로벌 파트너링’이었다. 해외 기업과 합작해 현지에 공장을 짓고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잔사유 물량을 확보하고 해외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일석이조 전략이었다.

SK루브리컨츠의 첫 파트너는 인도네시아의 국영 정유회사인 페르타미나(Pertamina)였다.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위해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발 벗고 나섰다. 최 회장은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만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설득해 합작법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8년 인도네시아 두마이에 설립된 공장에선 하루 평균 윤활기유 9000배럴이 생산된다. 2011년엔 스페인 렙솔(Repsol)과 제휴해 스페인 카르타헤나에 공장을 세웠다. 2015년부터 하루 1만3300배럴의 윤활기유가 생산된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기업과도 제휴를 맺었다. 2012년 일본 JX에너지와 합작해 울산 내 일일 2만6000배럴의 윤활기유 생산 규모를 갖춘 윤활기유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SK루브리컨츠의 윤활기유 하루 총생산량은 7만800배럴로, 전 세계 글로벌 수요(2015년 기준 약 68만 배럴)의 약 10%를 책임지고 있다.

막대한 시간과 돈이 드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게다가 2010년부터 2013년에는 유가 급락과 윤활기유 생산 급증으로 수익성도 크게 악화됐다. 하지만 노력은 확실히 보답했다. 최근 고급 윤활기유 수요가 급증하고 윤활기유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SK루브리컨츠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 이젠 지크다

SK루브리컨츠는 최근 윤활유 완제품인 지크의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유베이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은 만큼 ZIC도 윤활유 완제품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SK루브리컨츠는 신흥국가를 중심으로 시장 확대를 노리고, 각 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해 현지에 맞는 상품 구성과 브랜드 전략을 구사한다. 2012년 세운 중국 톈진 윤활유 완제품 공장을 통해 중국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프리미엄 제품군인 ZIC XQ는 2015년 ‘러시아 수입 윤활유 제품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SK루브리컨츠의 노력으로 현재 ZIC는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SK루브리컨츠는 향후 조인트벤처(JV), 인수합병(M&A)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sk루브리컨츠#휘발유#경유#잔사유#윤활기유#영업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