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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달려도 사람 뽑기 겁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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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달려도 사람 뽑기 겁나는 한국”

정세진기자 입력 2017-10-23 03:00수정 2017-10-2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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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말 자동차업계 떠나는 박동훈 르노삼성 사장의 쓴소리 《 20일 사임을 밝힌 박동훈 르노삼성자동차 대표이사 사장(65)은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독보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1989년부터 스웨덴의 볼보를 비롯해 독일의 폴크스바겐과 아우디를 수입해 판매했다. 폭스바겐코리아의 사장까지 지낸 그는 2013년 완성차업계인 르노삼성으로 자리를 옮겨 지난해부터 사장을 맡았다. 국내에서 수입차업계와 완성차업계에서 사장을 지낸 경력은 그가 유일하다. 》
 

13일 르노삼성자동차 본사에서 만난 박동훈 사장은 글로벌 자동차산업이 급변하는 가운데 한국의 경직된 노동시장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개정 움직임이 국내 자동차산업의 위기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고 우려했다. 르노삼성자동차 제공
사임을 밝히기 전인 이달 13일 박 사장은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르노삼성 본사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며 느낀 점을 털어놓았다. 그는 인터뷰 하루 전 우여곡절 끝에 노조와 임금협약 조인식까지 마쳐 다소 지친 표정이었다. 그는 인터뷰 첫머리에서부터 “완성차업계에서 노사 협상을 이끌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당초 르노삼성은 일찌감치 임금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1일 기아자동차 노조가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이긴 게 화근이 됐다. 소송 결과가 나온 다음 날 르노삼성 노조 조합원들은 노사가 잠정 합의한 임금협상안을 부결시켰다. 전체 투표자(2273명)의 약 58%(1322명)가 반대했다. 기아차 근로자의 임금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 르노삼성 노조원의 불만이 찬반 투표에 반영됐다. 박 사장은 “1차 투표가 부결되고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박한우 기아차 사장이 업계 모임에서 저를 만났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실 르노삼성 노조의 불만은 단순히 경쟁 업체와의 임금격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르노삼성은 프랑스의 르노와 일본 닛산의 연합체인 르노닛산얼라이언스의 일원이다. 회사 전략에 따라 르노삼성은 닛산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로그’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다. 2014년에 2만6000여 대를 생산하던 이 회사는 지난해에는 13만6000여 대를 만들어 수출했다. 부산공장의 가동률이 100%에 이르자 생산직 근로자들은 쉴 새 없이 평일 잔업과 주말 특근을 해야 했다. 노조는 어려움을 호소하며 추가 고용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 사장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르노삼성은 내년부터 생산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현재 마땅한 신차 생산 계획이 없는 데다 닛산 로그의 생산은 2019년 8월까지로, 계약 연장은 결정되지 않았다. 박 사장은 “당장 사람이 필요하다고 고용하면 일감이 줄었을 때 유지할 방법이 없다”며 “생산 물량이 줄어도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한 한국의 경직된 노동시장이 신규 고용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덥석 고용하면 나중에 감당을 못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대신 그는 기존 근로자의 고용은 최대한 유지하겠다는 내용의 고용합의서를 노조와 체결했다. 결국 기존 근로자의 일자리만이 강화된 셈이다.

박 사장은 한국의 노동시장을 르노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과 비교했다. 르노삼성이 소형 SUV인 QM3를 수입해오는 곳이다. 그는 “바야돌리드 공장은 생산량에 따라 인근의 발렌시아 공장과 인력을 교류한다”며 “심지어 일이 많아지면 근로자의 아내가 와서 일을 하고, 없으면 돌아갈 정도로 인력 운영이 탄력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일부 자동차공장은 같은 회사라도 공장 간의 인력 이동은 물론이고 같은 공장 생산라인에서의 이동조차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 일이 없어도 인기 차종을 생산하는 쪽으로 인력을 쉽게 이동시키지 못한다는 뜻이다. 박 사장은 “일본은 닛산 자동차 공장에 히타치 사람들이 와서 일을 하는 등 업종이 달라도 인력을 나눠 쓸 정도로 탄력적으로 운영된다”며 “한국도 유연성을 가지면서 고용을 보장하는 방식을 노사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진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론에 대해 그는 “한국은 노사 문제로 더욱 위기감을 느끼지만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전기차 등의 친환경 차량과 자율주행차 세상이 금세 올 것 같은 최근 분위기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박 사장은 자동차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감성 제품’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서 내연기관의 엔진 소리를 들으며 운전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며 “빠른 시일 내에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만으로 급격히 이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사장은 현재 진행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도 한국 자동차산업에 큰 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0년에 나올 닛산 로그의 후속 모델 생산을 위해 협의가 진행 중인 르노삼성에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는 “한미 FTA의 내용이 바뀌어 관세라도 부활하면 한국에서의 생산 및 수출 원가 계산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닛산이 한국에서의 생산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내 부품업체도 직격탄을 맞는다.

박 사장은 사임을 밝힌 직후 본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사임에 대해 “건강상의 문제와 개인적인 일로 르노 측에 사직 의사를 전달해 본사 측에서 수용한 것”이라며 “30년 가까이 몸담은 자동차업계에서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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