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잃어가는 현대인의 삶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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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

서울시극단 신작 ‘옥상 밭 고추는 왜’ 무대. 철거를 앞둔 낡은 빌라가 얇은 벽으로 나뉘어 있다. 서울시극단 제공
서울시극단 신작 ‘옥상 밭 고추는 왜’ 무대. 철거를 앞둔 낡은 빌라가 얇은 벽으로 나뉘어 있다. 서울시극단 제공
잘나가는 연출가와 극작가가 빚어낸 시너지 효과는 상당했다. 서울시극단 단장인 김광보 연출과 스타 작가 장우재가 11년 만에 함께 작업한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욕망과 ‘찌질함’을 따뜻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배경은 재건축을 앞둔 20년 된 낡은 빌라다. 304호에 거주하는 광자 할머니는 빌라 옥상 위에서 이웃과 나눠 먹을 고추를 정성스레 기른다. 상고 졸업 후 전화국을 다니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던 201호 거주자 현자는 그런 광자 할머니가 늘 눈엣가시다. 입주자들로부터 재건축 동의를 받아내며 돈 버는 데 혈안인 현자와 달리 광자 할머니는 지금의 빌라를 지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자가 광자 할머니의 고추를 수십, 수백 개씩 따가면서 사달이 난다. 항의하는 광자 할머니에게 현자가 “혼자 사는 년”이라며 욕을 퍼붓자 광자 할머니가 뒷목을 잡고 쓰러진다. 그리고 며칠 뒤 숨진다.

이 사건을 두고 빌라에 사는 주민들이 저마다 다른 입장과 태도를 보이며 갈등 구도를 드러낸다. 작품의 백미는 단연 배우 고수희의 찰진 연기다. 고수희는 ‘내 것은 귀하지만, 남의 것은 하찮다’는 천박한 사고의 ‘막장녀’ 현자를 완벽하게 그려낸다.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작품의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도덕성을 잃어가는 막장 현대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에선 아이러니하게도 러닝타임 내내 따뜻함이 느껴진다. 블랙코미디로 점철된 작품으로 맛깔 나는 대사와 배우들의 정감 가는 연기는 마치 주말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2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2만∼5만 원. 02-399-1114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옥상 밭 고추는 왜#김광보#장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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