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수용]‘툭 찌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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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가 매년 도로변에서 수거하는 쓰레기는 20만 포대, 7500t에 이른다. 환경보호단체인 클린업브리튼은 어떤 캠페인도 먹히지 않자 2015년 6월 행동경제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학자들은 쓰레기 투기가 아무도 자신을 모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저지르는 무의식적 행동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패스트푸드점들이 포장지 겉면에 구매자의 이름을 쓰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익명성이라는 커튼을 걷고 책임감을 드러내는 실험이 현재진행형이다.

▷비행기 이륙 직전 기장이 “추락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방송한다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이처럼 인간이 직관에 의존하는 비합리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라고 본다. 광우병 논란 같은 비이성적 공포가 쉽게 확산되거나 인터넷 홈쇼핑에 가입하면서 광고수신 거절항목에 클릭하는 수고를 귀찮아하다가 스팸 메일에 시달리곤 하는 이유다.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정부의 은근한 개입을 통해 직관적이고 게으른 사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8년 전 저서 ‘넛지(Nudge·툭 찌르기)’에서 밝혔다. 행동경제학을 현실에 접목한 그의 노력은 9일 노벨 경제학상으로 보상받았다. 넛지의 효과로 많이 인용되는 것이 암스테르담 공항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다. 소변기 중앙에 검은색 파리를 그려 넣자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 줄었다.

▷넛지는 어려운 문제를 두고 고민만 하는 대중 대신 정부가 답을 골라주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의 노후 대비책인 퇴직연금은 희망자만 들 수 있어서 가입률이 저조했지만 스스로 탈퇴하지 않는 한 자동가입하도록 구조를 바꾸면서 가입이 급증했다. 복잡한 세상에서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어렵고 국가의 선별적 개입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 개입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세일러가 넛지를 그냥 개입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개입’이라고 부른 이유다. 규제당국이 툭 찌르는, 부드러운 규제의 속성을 이해해야 친기업적 규제개혁도 가능하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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