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형병원 기증콩팥 배분 우선권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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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장기 기증자의 콩팥 2개 중 하나를 특정 병원에 나눠주는 이른바 ‘콩팥 인센티브’ 제도를 두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이 제도는 뇌사 기증을 유도한 병원을 보상한다는 취지인데, 생명 나눔의 숭고한 뜻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대기 순위가 느린 환자에게 장기가 먼저 돌아가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25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뇌사자의 장기는 배우자, 부모 등 4촌 이내의 친족에게 먼저 배정된다. 가족 중 이식 대기자가 없으면 해당 권역(서울·강원·제주, 대전·광주·충청·호남, 부산·대구·울산·경상)이나 전국에서 대기 순위가 높은 환자에게 넘어간다. 대기 순위는 △응급도 △대기 기간 △혈액형(백혈구 항원 조직형 일치 여부) 등을 고려해 매번 새로 매긴다.

그런데 콩팥이 유일한 예외다. 콩팥은 2개이기 때문이다. 두 개 중 하나는 이식 환자 선정 기준이 다른 장기와 똑같지만, 나머지 하나는 뇌사판정 병원과 뇌사자 발생 병원에 우선 배정된다. A병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해 B대학병원이 뇌사를 판정했다면 이 뇌사자의 콩팥 중 1개는 A병원이나 B대학병원에 다니는 이식 대기자 중에서 순위를 따로 매겨 먼저 주는 것이다.

이러한 콩팥 인센티브는 한국에서만 합법이다. 2000년대 초 뇌사 기증자가 급감하자 정부가 “환자가 뇌사 상태인지 아닌지 애매한 상황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판정하고 유가족에게 기증 의사를 묻는 수고를 한 병원이 이식 대기자를 적극 유치할 수 있게 하자”며 2003년에 도입했다.

문제는 콩팥 인센티브에 따라 배정된 장기가 후순위 대기자에게 돌아가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이뤄진 뇌사 콩팥 이식수술 3974건 중 콩팥 인센티브제도를 통해 뇌사 판정 및 발생 병원에 배정된 것은 1854건이다. 그러나 ‘인센티브 콩팥’이 해당 병원 내 1순위 대기자에게 이식된 사례는 202건(10.9%)에 불과했다. 나머지 1652건(89.1%)은 해당 병원의 2순위 이하 환자가 받았다.

반면 정부가 권역 및 전국 단위로 수소문한 ‘비(非)인센티브’ 콩팥은 1순위 대기자에게 이식된 비율이 17.4%였다. 콩팥이 특정 병원에 우선 배정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수술 성공률이나 위급도가 낮은 환자에게 돌아갈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뜻이다.

인센티브 제도가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뇌사 판정 병원은 대학병원 위주로 전국에 36곳만 지정돼 있다. 뇌사자가 발생한 병원의 의료진이 친분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병원에 뇌사 판정을 맡기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이식학회는 이 같은 이유로 2008년 “이식 장기의 배분에 재정적 고려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스탄불 선언’을 발표했다. 이주현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과장은 “‘불공정 배분’ 논란을 해결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기증콩팥#배분#우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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