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서동일]플랫폼 비즈니스에 눈뜬 SK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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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산업부 기자
서동일 산업부 기자
바디프랜드는 안마의자가 노년층 전유물 또는 실버 제품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기업이다. 건강에 관심이 높은 30, 40대도 안마의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 대중화에 성공했다. 아예 젊은층을 겨냥한 힐링 카페 ‘바디프랜드 파크’도 최근 시작했다.

정수기 렌털 사업으로 성장한 코웨이는 공기청정기, 비데 시장 점유율도 1위다. 코웨이는 이들을 모아 ‘환경가전’이라고 부른다. 가입자 건강과 직결되는 제품군이라는 뜻이다. 30∼50대 주부층이 주 고객이다.

바디프랜드와 코웨이에 관심을 가졌던 곳이 있다. SK그룹의 사업형 지주회사 SK㈜다. SK㈜는 두 기업을 통째로 사거나 지분 투자라도 하고 싶어 했다. 반도체와 정유·화학, 이동통신사업을 주력으로 삼는 SK의 지주사가 왜 안마의자나 정수기에 눈독을 들였던 걸까.

사실 SK㈜는 제품보다는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30∼50대 가입자 정보와 네트워크에 관심이 컸다. 평균 렌털 기간인 5년간은 가입자들의 집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살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플랫폼 비즈니스’다. 바디프랜드와 코웨이의 고객들은 제품 관리나 점검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현관문 잠금장치를 풀 준비가 돼 있었다. 두 기업이 쌓아온 신뢰야말로 플랫폼 비즈니스에서는 막강한 힘이 될 수 있다.

SK㈜가 플랫폼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진다는 단서는 또 있다. 이달 초 SK㈜는 미국 개인 간 차량 공유업체 ‘투로’에 지분 투자를 했다. 단순히 차량공유 서비스에 투자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투로 경쟁력의 핵심은 ‘모빌리티(이동성) 플랫폼’이라는 데 있다.

SK는 국내에서 ‘이동’이란 단어로 상상할 수 있는 과정 상당수에 대한 사업을 하고 있다. 우선 렌터카(SK렌터카)와 차량공유 서비스(쏘카)를 갖고 있다.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SK텔레콤의 T맵)이 알려준다. 기름을 넣을 주유소(SK엔크린)도 한 식구다. 결제나 멤버십 할인뿐 아니라 자동차 수리까지 SK라는 한 울타리 아래서 해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직은 계열사마다 흩어진 퍼즐 조각에 불과하다. 결국 이 조각들로 확실한 밑그림을 그려보겠다는 게 SK의 목표다. 자동차를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SK는 이들 사업 간 시너지로 언제든 ‘도로 위 점령자’가 될 잠재력을 확보하고 있다. 투로 지분 투자는 이 그림을 해외로까지 확대해보겠다는 장기 플랜의 일환일 것이다.

SK그룹이 안마의자, 정수기, 차량공유업체에 손길을 뻗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가치는 사용자 수가 결정한다. 이들 사용자 집단이 만들어내는 데이터와 네트워크 효과들이 곧 플랫폼을 가진 기업 가치다. 모바일을 기초로 한 산업 변화가 주로 ‘연결’에 집중돼 왔다면, 이제는 누가 그 위에 지붕을 지을 것인지가 핵심인 시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인공은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같은 기술이 아니라 플랫폼을 구축하는 자다”라는 분석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SK의 주력 사업은 에너지와 화학, 이동통신, 반도체였다. 각 산업 간의 장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지금 SK는 굳이 잘하는 사업 영역에만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한국에는 아직 건강과 의료, 자동차, 교육, 쇼핑 등 너무나도 많은 영역의 플랫폼들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다.

국내 대기업 중 SK가 그걸 가장 먼저 눈치 챘다.

서동일 산업부 기자 dong@donga.com
#플랫폼 비즈니스#s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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