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때보다 더하네요” 굴비의 한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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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1년… 영광 법성포 찬바람

22일 전남 영광군 법성포 굴비거리. 갯벌 해안을 따라 가게 400여 곳이 밀집한 거리는 추석 대목답지 않게 한산했다. ‘평화굴비유통’ 박모 씨(69)는 “법성포는 외환위기 때도 별 어려움을 몰랐는데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고 진짜 위기를 맞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법성포는 국내 굴비의 90%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호황이던 1990년대에는 ‘개도 1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개가 나돌 정도였다. 법성포 굴비는 설과 추석 때 연간 물량의 85%가 판매된다. 그만큼 명절 의존도가 높다.

국내 굴비의 90%를 생산 판매하는 전남 영광군 법성포 굴비거리.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추석 대목답지 않게 22일 굴비거리는 한산했다. 영광=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국내 굴비의 90%를 생산 판매하는 전남 영광군 법성포 굴비거리.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추석 대목답지 않게 22일 굴비거리는 한산했다. 영광=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처음 맞은 명절인 올 설 굴비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1200억 원에서 780억 원으로 35% 줄었다. ‘진영굴비’ 조모 씨(55·여)는 “올 추석은 지난해 추석 때 1350억 원보다 30% 이상 감소할 것 같다”며 걱정이 컸다. 상인들은 청탁금지법에 따른 선물 상한액 5만 원의 타격을 법성포가 가장 크게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영광군은 굴비를 5∼10마리로 줄인 선물 포장재를 지원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다. 5만 원 이하의 5마리짜리 굴비 선물을 보내면 받는 사람이 기분 나빠할까 봐 아예 주문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강철 영광굴비특품사업단장(70)은 “굴비업체 465곳 가운데 90%는 빚내서 운영하는 영세 업체인데 서서히 문을 닫는 위기 상황”이라고 전했다.

상인들은 선물 가액을 10만 원으로 올리는 정치권의 법 개정 논의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추석은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보길굴비수산’ 장모 씨(48)는 “투명한 사회를 위한 법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개혁 대상도 아닌 상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토로했다.

설상가상 참조기 어획량도 감소했다. 국내 참조기 어획량은 2011년 5만9000t에서 지난해 1만9000t으로 5년 만에 68%나 줄었다. 이로 인해 가격은 40% 올랐다. 굴비는 마리당 10∼20g 차에 따라 가격 차가 많이 나는데 5만 원 넘는 상품은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국내 전복의 80%를 생산하는 전남 완도 분위기도 비슷했다. 완도 어가(漁家) 2000곳에서 연간 1만4900t을 생산한다. 물량의 절반가량은 설과 추석 선물로 판매된다. 그러나 올해 설 대목 전복 판매량은 지난해 설보다 30% 정도 줄었다. 조승호 완도군 시장개척담당은 “추석 전복 판매량도 30%가량 감소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완도군은 전복 판매 촉진을 위해 소포장 판매 지원, 직거래 장터 활성화에 힘쓰지만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연간 400t가량 되던 전복 수출이 올해는 지난달까지 3t에 그쳤다. 전복 폐사도 복병이다. 어민 오지수 씨(35)는 “최근 10년 사이 이번 추석에 전복 가격이 가장 많이 떨어져 적자를 보며 양식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범성 완도전복유통협회장(58)은 “3, 4년간 찬 바닷바람 맞아가며 키운 전복을 공산품처럼 여기는 것 같다”며 “농축수산물에 깃든 농어민의 땀을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영광·완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김영란법#굴비#법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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