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빅데이터는 인간 억압하는 살상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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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 수학무기/캐시 오닐 지음·김정혜 옮김/392쪽·1만6000원·흐름출판

범죄 예측 프로그램을 비판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저자는 범죄 발생률이 높은 지역을 추출한 범죄예측모형은 공정해 보이지만, 순찰 시간이 늘어나 경범죄로 체포되는 이들이 증가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동아일보DB
범죄 예측 프로그램을 비판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저자는 범죄 발생률이 높은 지역을 추출한 범죄예측모형은 공정해 보이지만, 순찰 시간이 늘어나 경범죄로 체포되는 이들이 증가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동아일보DB
숫자는 진실을 말하고 빅데이터는 더 나은 현실을 만들까. 하버드대 수학박사로 수학과 교수를 지내다 헤지펀드 디이 쇼에서 퀀트(계량분석가)로 일한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재닛 나바로는 네 살짜리 아이를 키우며 대학에 다니는 싱글맘이다. 회사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 직원을 더 배치했고, 업무 시간을 하루 혹은 이틀 전에 통보받은 직원들은 근무 일정이 들쭉날쭉해졌다. 규칙적으로 보육 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워진 재닛은 결국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수학, 빅데이터, 정보기술(IT)의 결합으로 만든 알고리즘이 인간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현장에서 경험하며 수학과 금융이 결합된 파생상품의 가공할 파괴력을 목도한 저자는 빅데이터가 법, 교육, 노동, 보험 등 각 분야에 침투해 차별을 공고히 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현실을 폭로한다. 수학을 대량살상무기에 빗댄 것도 그 때문이다.

2009, 2010년 워싱턴 교육청은 학생 25∼30명의 시험 성적만으로 교사를 평가한 후 206명을 해고했다. 기준은 한 컨설팅 업체가 만든 평가 모형으로, 가정환경의 변화와 학습 장애 등 학업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는 배제됐다. 학생과 학부모가 유능하다고 인정했던 새러 와이사키는 교단을 떠나야 했고, 이후 사립학교에 임용됐다. 가난한 지역의 공립학교는 우수한 교사를 잃은 것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모형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뢰자와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의 의도가 반영된다. 대학 평가를 도입해 영향력을 키운 시사 잡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하버드대, 예일대처럼 등록금이 비싼 명문대에 불리한 교육비 항목은 평가에 넣지 않았다. 미국 일부 주에서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재범위험성 모형에는 친구와 친척에게 전과가 있는지 묻는 항목이 있다. 빈곤 지역의 흑인은 중산층에 비해 ‘그렇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아 죄를 지을 경우 무거운 형을 받을 확률이 커진다.

구체적인 사례들은 빅데이터 시대에 드리운 어둠에 대한 우려가 과장이 아님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진실을 찾는 대신 스스로 진실을 구현하는’ 인간의 오만을 막는 것 역시 인간의 손에 달렸음을 깨닫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대량살상 수학무기#캐시 오닐#빅데이터#살상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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