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원재]일본의 퇴행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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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며칠 전 일본 유명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 등 문화인 21명이 성명을 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1일 간토 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사를 보내지 않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에 대한 항의 성명이었다.

문득 3주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추도식이 열리는 도쿄 스미다구의 공원에 도착했을 때였다. 바지가 벗겨진 남성이 속옷 차림으로 끌려 나가고 있었다. 경찰 다섯이 팔과 다리, 머리를 든 채였다. 남성은 “이거 놔. 저놈들이 뭘 하는지 보라”며 악을 썼다.

일본에선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눈을 의심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우익들이 추도식을 방해하려 한다는 정보를 들었던 터라, 당연히 끌려 나간 남성이 우익단체 회원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반대였다. 우익단체 회원 30여 명은 평화롭게 집회를 하고 있었고 경찰은 신고된 집회라며 이들을 보호했다. 그 대신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는 일명 ‘카운터 시위대’를 한 명씩 끌어내던 중이었다.

우익 집회에는 ‘6000명 학살은 정말인가’ ‘일본인의 명예를 지키자’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여성은 “일본인은 한신, 고베 대지진 때 침착히 대처해 세계의 칭찬을 받았다. 간토 대지진 때도 가족과 지역을 지키기 위해 일어났을 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추도식 주최 측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들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1973년 추모비를 세운 후 매년 행사를 열었지만 우익이 옆에서 집회를 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관계자는 “우발적인 일이 아니다.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흐름 위에 있는 것”이라며 분노했다.

되짚어 보면 말 그대로였다. 징조는 올 3월 도쿄도의회에서 나타났다. 자민당 고가 도시아키(古賀俊昭) 의원이 “희생자 6000명은 근거가 희박하다. 추도문을 보내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 당시 “적절히 판단하겠다”고 했던 고이케 지사는 지난달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고가 의원과 고이케 지사 그리고 우익단체는 어떤 관계일까. 고가 의원은 집회를 연 단체와 면담하는 등 수차례 교류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대지진 때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고이케 지사 역시 2010년 이 단체에서 강연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기반으로 세워진 지금의 일본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선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난징 대학살과 간토 대지진 학살을 두곤 ‘숫자가 과장됐다’고 한다. 또한 ‘지금은 역사전(歷史戰) 시대’라며 한국 중국을 ‘적’으로 규정한다. 문제는 이들의 목소리가 도지사의 40년 추도문 전통을 중단시킬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이번 일은 ‘일본의 퇴행’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리고 서막에 불과하다. 우익세력은 추모식을 중지하고 추도비를 철거할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지금보다 더한 악다구니와 대결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모두에 언급한 문화인들의 성명도 그렇지만 기자를 더 감동시킨 건 당일 추도식에 참석한 일본 시민들이었다. 예년의 2배인 500명이 모였다고 했다. 이들은 추도비 앞에서 말없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이날 본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기자도 손을 모았다.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동시에 우익의 폭주를 막을 일본 시민사회의 건투를 빌었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히라노 게이치로#일본의 퇴행#간토 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고이케 유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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