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제대로 분배하고 싶은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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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의 분배정책 밀어붙이는 정부
대기업 정규직이 가져가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몫… 바로잡지 않는 이유가 뭔가
지속성장 외면한 세금 퍼주기, “득표 노린 전략” 소리 나올 것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자본주의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케인스가 어쩌고 유효수요가 어쩌고 할 것도 없다. 소비대중이 돈이 없어 구매력이 떨어지면 소비도 생산도 그걸로 끝이다.

실제로 지난 100년의 세계경제는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컸던 1930년대 이전의 자유주의 체제와 최근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대공황과 금융위기를 불렀다. 성장률 또한 높아야 3% 정도, 정부가 분배 문제에 적극 개입했던 이 두 시기 사이의 성장률 4∼5%에 비해 낮다.

그래서 이해가 된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이름 아래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그리고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등 각종 분배 정책을 앞세우고 있는 정부 입장 말이다. 분배 구도가 악화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까지 하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뭔가 개운치 않다. 정책의 효과성에 의구심이 일기 때문만도 아니고 필요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걱정 때문만도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또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엉뚱한 의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선 그 하나. 분배도 결국은 지속성장을 위한 것, 어떤 경우에도 지속성장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특히 투자를 해야 할 사람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줘 투자를 포기하게 하거나 도망을 가게 해서는 안 된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말했지만 미국 기업과 부자들은 대공황 이후 90%가 넘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감당하는 등 엄청난 부담을 안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이들은 투자를 계속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고 정부 또한 이들의 이러한 믿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인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도 그렇다.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대신 보유 주식 1주로 10주 혹은 그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차등의결권을 인정받고 있다. 가문의 경영권 승계를 완벽히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때로 이 제도가 도전받기도 하지만 이 역시 시장(市場)에 의해서이지 정부에 의해서는 아니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에 따른 부담을 걱정하는 기업들과 자영업자들, 특히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계상황으로 내몰려 있는 이들에게 어떤 비전과 믿음을 주고 있는가?

또 하나. 우리는 1차 분배, 즉 시장 안에서의 분배에 있어 정의롭지 못한 부분이 많다. 이유는 하나, 힘의 불균형 때문이다. 힘 있는 정규직 교수들은 힘이 없는 계약직 교수들의 몫을 가져가고, 힘 있는 대기업과 대기업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몫을 가져간다.

정부는 당연히 이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이 잘못된 구도가 만드는 불평등까지 2차 분배, 즉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한 노동자들을 예로 들면 산별교섭과 연대임금제로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를 견제하게 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교수들의 경우도 비슷한 방법들이 있을 수 있고.

하지만 정부의 관심은 아무래도 2차 분배 쪽에 더 있는 것 같다. 불공정 거래와 ‘갑질’ 같은 것을 단속하고 있지 않으냐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당하고도 당했다 말할 힘도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판이다. 그런 개별적인 접근으로 어느 세월에 이 잘못된 구도를 바로잡겠나.

짧게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 최저임금 인상 등 수혜자 개개인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주는 정책이 앞서고 있다. 유럽 국가들과 같이 실업안전망 등 분배 구조 개선을 위한 집합적 서비스 체계가 잘 마련돼 있으면 괜찮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교육 체계 하나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돈을 어느 쪽에 먼저 써야 하겠나. 개인의 주머니에 바로 집어넣어 주는 쪽? 아니면 집합적 서비스 체계를 마련하는 쪽? 최소한 이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할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인내와 양보를 요청해야 할 때 아닌가?

왜 이렇게 투자와 1차 분배 구조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뒤로 가고 수혜자 개개인에게 직접 이익을 주는 정책들이 앞서고 있을까? 표를 의식해서일까? 일단은 아니라 하자. 하지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 가면 분배 정책은 없고 표를 얻기 위한 전략만 있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반드시.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분배#비정규직#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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