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내가 인생에 복무하는 방식… 슬럼프 느낄 새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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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 낸 소설가 이승우

신작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을 펴낸 이승우 소설가. 그는 “단편 ‘복숭아 향기’는 결혼 후 힘든 삶을 예견하고도 이를 주체적으로 선택한 여성을 그린 작품”이라며 “평생 고생한 어머니에 대한 헌사로 쓴 첫 소설”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신작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을 펴낸 이승우 소설가. 그는 “단편 ‘복숭아 향기’는 결혼 후 힘든 삶을 예견하고도 이를 주체적으로 선택한 여성을 그린 작품”이라며 “평생 고생한 어머니에 대한 헌사로 쓴 첫 소설”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버지의 부재,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등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주제 의식은 여전하지만 서사의 힘이 더 강해졌다. 이승우 소설가(58)의 열 번째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문학동네)은 인간의 내면을 심연까지 파고들면서도 이야기가 지닌 흥미로움을 놓치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5일 그를 만났다. 최근 3년간 책에 담긴 8개 단편을 쓴 그는 “내게 다가온 절실한 순간들을 포착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대통령 탄핵 등 사회적 이슈가 스며들었다는 것. 책에는 전횡을 저지른 시장의 퇴진운동에 앞장서던 중고교 시절 피해를 준 친구를 만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교수, 권력자의 아들에게 짓밟힌 가족이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난 현실도 투영됐다.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해 밤마다 집 주변을 맴도는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두려움이 증폭되는 여성, 찰스라는 말레이시아 남성 때문에 성가신 일을 겪는 김철수 교수의 이야기가 그렇다.

“젊을 때는 경험이 적다 보니 다소 관념적으로 썼던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르며 여러 사건을 접하고 이야기도 듣다 보니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걸 느낍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거나 어머니에게 고통만 주고 떠난 아버지에게 얽힌 사연을 짚어 가는 과정은 그가 항상 붙잡고 있는 화두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늘 ‘왜?’라는 질문을 하며 글을 씁니다. 인물이 무엇을 했느냐보다는 행동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복잡한 내면을 분석하면서 조금씩 나아가죠.”

그의 문장은 단단하고 논리 정연하다. 그가 국내에서보다 프랑스 독일 등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신학을 전공한 그의 글에 서구 독자들이 매료되는 이유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간 내면에 대한 논리적인 사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2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를 비롯해 현지에서 큰 사랑을 받은 ‘식물들의 사생활’과 ‘생의 이면’까지 프랑스에 소개된 작품은 일곱 권이나 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좋아하는 한국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황석영 씨와 함께 그를 꼽았다. 이에 대해 그는 얼굴이 살짝 빨개지며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올해로 등단한 지 36년이 되는 그는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왔다. 지칠 때는 없었을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슬럼프는 정점에 섰던 사람이 겪는 거잖아요. 저는 한국 문학의 중심에 있었던 적이 없어요. 항상 서 있긴 했지만 가장자리였죠. 슬럼프가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요즘 그는 대공포가 설치된 서울의 빌딩 옥상에 근무하는 병사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을 중심으로 경계의 의미를 담은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도 모으고 있다.

“글을 쓸 때 존재의 이유를 느낍니다. 인생에 복무하는 방식이자 결핍을 채워주는 게 글쓰기니까요. 멈추지 않고 언제나 글을 쓰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소설 모르는 사람들#소설가 이승우#식물들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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