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가 된 집안 IP카메라… 1400대 해킹, 사생활 엿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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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훔쳐보고 동영상 유포 50명 적발

《 좀도둑을 막으려고 집 안에 설치한 IP카메라가 주인의 사생활을 찍는 몰래카메라로 바뀌었다. 속옷 차림의 주부, 옷을 갈아입는 여대생, 적나라한 부부관계까지 은밀한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됐다. 해커들은 생중계로 이 모습을 지켜봤고 녹화한 영상을 국내외 사이트에 올렸다. 해킹당한 IP카메라는 1402대. 비밀번호는 단 3초 만에 뚫렸다. 이제 집 안에서도 몰카 공포에 떨어야 한다. 》
 

“인터넷에 너 닮은 영상 있어.”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A 씨(34)는 ‘설마’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면서도 걱정보다 호기심이 더 컸다. 하지만 마우스를 클릭 하는 순간 A 씨는 눈을 의심했다. 자신과 여자친구와의 은밀한 사생활 장면이 담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영상을 꼼꼼히 살펴봤다. 자신과 여자친구의 얼굴이 맞았다. 무엇보다 영상 속 배경이 익숙한 여자친구의 집이었다. 기억을 살려 보니 시기는 올 1월경이었다.

A 씨와 여자친구는 ‘셀카’ 영상을 찍은 적도 없다. 두 사람은 고민 끝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여자친구 집에 설치된 IP카메라가 해킹당한 것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카메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제어할 수 있다. 보안이나 자녀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 대용으로 많이 쓰인다. 결과적으로 집 안에 주인이 스스로 몰래카메라(몰카)를 설치한 셈이다.

A 씨는 “내 사생활이 고스란히 인터넷에 노출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무섭고 두렵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여성 B 씨는 해킹 사실조차 몰랐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의 연락을 받고서야 자신이 운영하는 의류점포 내 IP카메라가 해킹당한 걸 알았다. B 씨 매장 영상에는 자신을 비롯해 여성 고객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까지 담겨 있었다. B 씨는 “매장 관리 차원에서 설치한 건데 해킹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가정이나 점포 등에 설치된 IP카메라를 해킹해 사생활을 엿보고 영상을 유통시킨 누리꾼 수십 명이 적발됐다. 해킹된 IP카메라는 확인된 것만 1402대. IP카메라의 대규모 해킹 사실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는 지하철이나 공중화장실뿐 아니라 내 집에서도 몰카 걱정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정보통신망 침해) 등의 혐의로 임모 씨(23·회사원) 등 2명을 구속하고 전모 씨(34) 등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9일 밝혔다. 임 씨 등은 올 4월부터 이달 초까지 IP카메라 7407대의 인터넷주소(IP)를 알아낸 뒤 보안이 허술한 1402대를 해킹한 혐의다. 이들은 IP카메라에 2354차례 무단 접속해 옷을 갈아입는 여성의 모습 등 사생활을 엿봤다. 또 본체에 담겨 있던 녹화 영상을 빼내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이 목표로 삼은 건 초기 설정된 아이디(ID)나 비밀번호(패스워드)를 그대로 사용한 IP카메라였다. 보통 숫자로만 이뤄진 비밀번호는 3초, 숫자와 문자 조합은 3시간이면 해킹이 가능하다. 이들은 경찰에서 “여성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 씨 동영상을 다른 사이트에 유포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김모 씨(22) 등 37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상당수는 불법 촬영물 유포가 범죄인지도 몰랐다. 경찰은 “단순한 호기심에 불법 촬영된 영상물을 한 번만 유포한 경우에도 성폭력범죄특례법으로 처벌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최상명 하우리 실장은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보안 프로그램 파일’을 내려받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게 정석이지만 일반인이 설치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IP카메라가 침실 같은 사적인 공간을 향하지 않게 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원을 꺼두거나 렌즈를 접착식 메모지 등으로 가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수원=남경현 bibulus@donga.com / 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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