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팬티 염라여왕… 故마광수가 그린 지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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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소설집 ‘추억마저 지우랴’ 출간
단편 28편… 자유로운 상상력 담아

“아, ××, 더러운 세상 잘 떠났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 2년 만에 돌연 사망한 마광수 교수의 영혼이 중얼거린다.

5일 별세한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66)가 쓴 단편소설 ‘마광수 교수, 지옥으로 가다’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인의 단편 28편을 모은 유고 소설집 ‘추억마저 지우랴’(어문학사)가 14일 출간됐다.

책 표지에는 1991년 출간한 ‘즐거운 사라’ 표지 삽화를 색깔만 바꿔 실었다. 이 삽화는 고인이 직접 그린 것. 책에는 ‘허무한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고인이 그린 삽화도 함께 담았다. 보통 삽화는 마 교수가 선택했지만, 이번 책은 마무리 단계에서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출판사에서 골랐다.

‘추억마저…’에서 저자는 페티시즘과 마조히즘, 그룹섹스 등을 등장시키며 성에 대한 특유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과감하게 풀어냈다. 마 교수가 간 지옥에는 투명한 망사 브래지어를 하고 티팬티를 입은 염라여왕이 미소년, 근육질 꽃미남과 함께 있다. 그곳에서 마 교수는 온몸에 피어싱을 해 한층 더 야해진 사라를 만난다.

작품 곳곳에는 고인이 느꼈던 외로움도 짙게 배어 있다. ‘고독의 결과’의 주인공은 같은 꿈을 반복해 꾸며 외로움에 야위어 간다. 고인이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고독의 결과’는 주인공이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우리 사회의 위선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대목도 있다. ‘절망적인, 너무나 절망적인’에서는 ‘초초초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학생이 “사람들은 극단적인 도덕주의에 세뇌돼 겉으로만 도덕적인 척하며 살고 있고, 자유주의 사상은 범죄로 취급돼 정신훈련소에 감금된다”고 말한다. 자신을 단죄했던 법을 풍자하기도 한다.

박영희 어문학사 대표는 “고인은 기존에 써 놓았던 성에 대한 작품은 올해까지만 출간하고 내년부터는 순수 문학 작품을 쓰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추억마저…’는 초판 1000권을 찍었다. 서점에 배포한 물량은 평소보다 50% 늘렸다. 올해 1월 출간한 시선집 ‘마광수 시선’(페이퍼로드)은 하루 10권가량 판매됐지만 저자가 별세한 후 100∼200권이 나가 최근 1000권을 더 인쇄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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