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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치지 않는 자의 골프 이야기]<7>나의 홀인원을 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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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치지 않는 자의 골프 이야기]<7>나의 홀인원을 알리지 말라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입력 2017-09-14 10:00수정 2017-09-1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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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야기다. 후배 한 명과 경기도 수원에 마케팅 강의를 하러 갔다. 해당 광고주가 인심 후하게도 기사가 딸린 차를 내줬다. 그런 배려 덕분에 강의도 잘 끝났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안락한 고급차를 타고 오는데도 이상하게 후배의 얼굴이 불편해보였다. 안절부절 하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나’라고 여겼다. 경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도착하자 후배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선배 저….”
“응. 뭐?”
“제가 지난 주말에 생애 첫 홀인원(hole in one)을 했어요.”

웃음이 나왔다. 가뜩이나 말수가 적은 후배가 얼마나 홀인원을 자랑하고 싶었으면 1시간 내내 속으로 안달을 했을까 싶었다.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짓던 후배도 같이 웃었다.

당시 필자가 몸담고 있던 회사에는 비공식 ‘골프 금지령’이 내려져 있었다. 한국 조직에서의 골프 금지령이란 대개 문서가 아니라 구두나 단순한 암시로 시행된다. 그러나 구속력은 대단하다. 그런데도 이 용감한 후배를 포함한 4명의 조직원이 몰래 골프장을 갔고 덜컥 홀인원까지 한 것이다.

“선배. 같이 간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이어서 좀 자랑하고 싶었어요. 선배라면 비밀을 지켜주실 것 같아서요.”

후배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큰 키와 날렵한 체구를 지닌 이 후배는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즐겼고 상당한 실력도 겸비했다. 하지만 유독 홀인원과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 몰래 나간 골프장에서 첫 홀인원을 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몇몇 사람을 불러 축하 턱을 내기로 했습니다. 특별 손님으로 모실 테니 꼭 오세요.”

유감스럽게도 다른 일이 생겨 그 자리에 가진 못했다. 그런데도 후배는 기어코 내 손에 화장품 세트를 쥐어 주었다. “보통 골프공을 선물로 돌리는데요. 선배는 골프를 안 치시니 이거라도 드려야할 것 같아서….”


대체 홀인원이 뭐 길래 같이 골프를 친 멤버도 아닌 나에게까지 선물을 준단 말인가. 얼결에 선물을 받아 좋았지만 골프를 치지 않는 필자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홀인원을 한 사람이 주변인에게 골프공이나 USB 드라이버를 선물로 주려면 꽤 돈이 든다. 당연히 밥도 사야 한다. 해당 골프장에 기념식수(植樹)라도 하는 날이면 수백만 원이 추가된다. 그런데도 골퍼들은 홀인원을 꿈꾼다.

왜 그럴까. 소설가 김이연 선생이 2011년 한 골프 잡지에 기고한 글이 있다. 그 역시 우연히 홀인원을 하고 약 150만 원을 축하 턱을 내는 데 썼다. 심지어 한 은행원의 권유로 ‘홀인원 보험’까지 가입했다.

이상하게 보험에 가입한 후 공이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홀인원은커녕 타수만 평소보다 급격히 불어났다. 그는 홀인원 보험에 들었다는 사실을 주변인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만 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허욕과 민망의 세월’ 5년이 흘렀다. 결국 보험 만기까지 맞이했다. 김이연 선생은 “이후 아예 홀인원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미국 골프잡지 ‘골프다이제스트’가 2005년 유명 수학자에게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아마추어 골퍼의 홀인원 확률은 1만2000분의 1이다. 매 주말, 즉 1년에 약 50회 골프를 치는 일반인이 홀인원을 하려면 240년(!) 내내 주말마다 골프를 쳐야 1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프로 선수라면 이 확률이 3000분의 1로 떨어진다. 그래도 평생 한 번 할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렵다.

물론 이 희박한 확률을 거스르는 이들은 언제나 있다. 예전 상사 한 분은 동반자의 실력에 따라 자신의 타수도 스스로 조절이 가능한 ‘접대 골프의 귀재’였다.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아마추어 골퍼답게 홀인원도 2번이나 했다.

그가 첫 번째 홀인원을 했을 때다. 그는 필자를 포함한 팀장 이상에게 수건을 기념품으로 선물했다. 밥도 거하게 샀다. 당시 필자에게 “당신은 골프를 치지 않으니 뒷풀이라도 반드시 참석하라”고 해서 밥을 잘 얻어먹었다.

해당 상사는 두 번째 홀인원을 하고도 필자를 불렀다. 골프도 안 치면서 홀인원 턱으로 두 번이나 밥을 얻어먹고 선물까지 받으니 빈손으로 가기 민망했다.

다행히 말 한 마디로 답례를 대신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해당 상사가 2번, 상사의 부인이 무려 4번의 홀인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부부 합산 여섯 번 홀인원이라니 기네스북에 올라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놀라워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최다 홀인원을 한 사람은 무려 61번을 했다고 한다. 필자가 “61번의 기록을 깨시라”고 했더니 상사가 호탕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던 기억이 난다.

회사 방침을 어기고 골프장에 나가 덜컥 홀인원을 한 후배가 굳이 내게 홀인원 사실을 토로한 이유, 두 번이나 홀인원을 한 상사가 매번 나를 축하 모임에 부른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함께 골프를 칠 일이 없으니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다. 골프장에서 만나 “내가 당신보다 실력이 낫다 아니다”로 옥신각신할 이유도 없고 다른 골퍼들에게 말을 옮길 일도 없다.

나 역시 골프를 아예 치지 않으니 ‘1만2000분의 1’이라는 횡재를 바랄 이유가 없다. 또 이를 통해 부담 없이 홀인원한 이들과 어울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parkjaehang@gmail.com

::필자는?::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등을 역임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프랑스계 다국적 마케팅기업 하바스코리아의 전략부문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마인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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