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단독]악몽 시달린 여학생 그림엔 ‘피 범벅’
더보기

[단독]악몽 시달린 여학생 그림엔 ‘피 범벅’

최지선 기자 입력 2017-09-14 03:00수정 2017-09-14 09:44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학교폭력 2년… 재판도 안열고 가해학생 멀쩡히 학교생활
정신병원 입원후 수차례 자해
피해자 어머니 “손만 잡아도 놀라… 진심어린 사과라도 받아봤으면”
학교폭력 피해자 예은(가명) 양이 병원에서 심리상담할 때 그린 그림. 상처투성이에 피 흘리고 있는 사람의 이마에는 ‘힘들어!’라고 쓰여 있다.

열다섯 살 예은이(가명·여)의 왼쪽 손목에는 흉터 5개가 있다. 2015년 12월부터 두 달간 정신병원에 있을 때 자해한 흔적이다. 정신병원에는 뾰족한 물건을 반입할 수 없다. 예은이는 공부 때문에 연필 반입이 허락됐다. 그 연필로 예은이는 자신의 손목과 종아리 아킬레스건을 수차례 그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그리고 우울증.’

예은이가 받은 진단이다. 악몽은 2015년 7월 시작됐다. 상대는 같은 반 여학생 2명이었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예은이를 조롱했다. 남학생이 있는 자리에서 “예은이는 가슴이 엄청 작다”며 큰 소리로 노래 불렀다. 가슴을 만지고 엉덩이를 발로 차는가 하면 치마를 들추기도 했다. 성추행, 성희롱과 다름없었다. 심한 성적 수치심을 느낀 예은이는 지금도 또래 남학생을 보면 몸이 굳어버린다.

같은 해 11월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학폭위는 “동급생끼리 벌어진 오해”라며 폭력행위로 보지 않았다. 그 직후 예은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상담교사에게 ‘죽고 싶어요. 제가 죽으면 엄마가 힘든 것도 끝나겠죠? 돈도 많이 드는데…’라는 글을 남겼다. 약 두 달 뒤 열린 서울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가해학생은 장난이나 피해학생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학교폭력을 인정했다. 경찰은 지난해 6월 보호처분 의견으로 사건을 서울가정법원 소년부에 송치했다.

예은이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결국 퇴원 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안학교로 옮겼다. 하지만 가해학생은 끝내 “미안하다”는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예은이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다. 심리치료 때 예은이가 그린 그림 속 주인공은 칼에 베인 상처가 있거나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예은이 부모는 법에 기대서라도 사과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달 법원은 ‘심리 불개시’ 처분을 내렸다. 재판을 아예 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법원은 “가정법원 소년부는 교화가 목적”이라며 “가해학생을 대상으로 두 차례 상담을 진행했고, 처분을 내릴 만큼 가해 사실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예은이 부모는 한 달 넘게 법원 처분 사실조차 몰랐다. 소년 사건은 비공개가 원칙이라 피해자에게 결과를 통보하지 않는다. 가해학생들은 법원 처분을 이유로 예은이 가족의 사과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예은이 엄마는 13일 “지난 2년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지옥이었다”며 “아이는 정신병원에 다니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는데 재판조차 열리지 않은 걸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우울증까지 앓게 된 예은이 엄마는 가해학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 아이들이 한복 입고 경복궁 놀러 간 사진을 올렸어요. 예은이는 컴컴한 방에서 제가 손만 잡아도 깜짝 놀라는데…. 그냥 예은이가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다시 명랑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는 게 소원이에요.”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학교폭력#정신병원#피해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

부동산 HOT ISSUE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