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공격땐 지하 5층이나 30cm두께 콘크리트벽 뒤로 피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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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경보때 대피 이렇게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 사흘째인 23일 오후 2시.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적의 공습에 대비한 민방공 대피훈련이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됐다. 북핵 위기가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열린 훈련 현장을 동아일보 취재진이 점검했다.

◆쇼핑거리=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사이렌이 울리자 주민센터 직원 3명이 나타났다. 손에는 민방위 로고가 박힌 대형 깃발을 들었다. 행인들은 말없이 서 있는 공무원들을 멀뚱히 바라봤다. 한 외국인은 한국인을 붙잡고 “무슨 소리냐”라고 물었다. 적의 폭탄이 투하되고 지상군 공격이 시작됐을 때 나오는 공습경보였지만 시민들 표정은 한가로웠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행인들은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건물 지하주차장 등 지하시설로 대피해야 한다. 만약 핵 공격이면 지하 4, 5층 깊이인 15m 아래까지 내려가야 폭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행정안전부가 만든 스마트폰 앱 ‘안전디딤돌’을 활용하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피소를 찾아볼 수 있다.

◆도로=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 왕복 8차로 도로를 지나던 차량들은 공무원들의 통제에 일제히 멈췄다. 일부 차량이 경적을 울렸지만 이내 잦아들었다. 8차로를 드문드문 메운 차량들은 정확히 5분 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방위 훈련 규정(5분 정차 후 이동)은 지켜졌다. 하지만 실제 공습 상황에선 차량을 오른쪽 갓길로 옮겨 정차해야 한다. 운전자는 차 키를 꽂아둔 뒤 지하시설로 피신해야 한다.


◆백화점=롯데백화점 1층 안내데스크 앞에 있던 중국인 관광객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화장품 매장의 위치를 안내하던 데스크 직원은 사이렌 소리에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곧 이어 “민방위 훈련이 시작됐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화장품과 귀금속 코너 등 대부분의 직원은 별다른 동요 없이 손님을 맞았다. 한 백화점 직원은 “훈련이지만 오가는 고객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화점은 대표적인 다중이용시설이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직원들은 업무를 중단하고 손님들을 지하주차장 등 대피시설로 안내해야 한다.

◆지하 대피시설=명동 지하쇼핑센터는 대피시설로 지정됐다. 매뉴얼대로면 이 시간 몰려드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뤄야 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지하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비상시에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등 전동장치 대신 계단으로 오가야 한다. 지역 민방위대장은 “지난해 민방위 훈련 때 실제 상황처럼 행인들을 통제하려다 몸싸움까지 난 적이 있다. 어차피 통제에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관=이날 낮 12시 50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덩케르크’ 등 영화 상영이 한창이었다. 훈련 시작 직전인 오후 1시 55분 모든 영화가 중단됐다. 상영관에선 “잠시 후 사이렌이 울리면 20분간 멈춘 뒤 다시 이어 상영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공습경보가 울리자 상영관에 있던 관객 80여 명은 직원 안내에 따라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 1층의 대피시설로 지정된 마트 안으로 이동했다. 매뉴얼대로 지켜진 사례였다.

◆초고층(50층 이상) 건물=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는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 건물이다. 취재진은 이 건물 34층에 입주한 A업체의 대피 훈련에 참여했다. 사이렌 소리에 직원들은 비상구 계단을 통해 22층으로 걸어 내려갔다. 22층은 피난안전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피난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었다.

일반 건물은 계단으로 대피하지만 초고층 건물은 통상 20층 단위로 1곳씩 설치된 피난안전구역으로 일단 이동한다. 이곳에는 화재나 정전에도 가동되는 피난용 엘리베이터가 별도로 있다. 높은 층에서부터 걸어서 내려가려면 오래 걸리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정체를 빚기 때문이다.

A업체 직원들은 매뉴얼대로 대피하긴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2층 피난용 엘리베이터 앞에는 수백 명이 줄지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데만 20분을 기다렸다. 직원들은 “이 정도 시간이면 공습이 이미 끝났을 것 같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학교=서울 도봉구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사이렌이 울리자 모두 운동장과 1층 복도에 모였다. 교내에 별도의 지하 대피소가 없기 때문이다. 행안부 앱 ‘안전디딤돌’을 검색해 보니 서울 강북구 도봉구 동대문구 동작구 용산구 은평구 중구 등 7개구에는 학교 자체 대피소가 한 곳도 없었다. 서울시내 초중고교는 1364곳이지만 자체 대피소를 두고 있는 학교는 75곳에 불과하다.

김예윤 yeah@donga.com·최지선·이지훈 기자
#공습경보#대피#민방위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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