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일 “시력 잃어가며 그림으로 우울증 날렸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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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연 소영일 前연세대 교수
행복에 목 말랐지만 결혼 실패… 녹내장-모친 치매 우울감 극에 달해
행시 동기 권유로 그림그리기 시작, 희열 느끼며 삶도 통째로 변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볼더스 해변에는 약 3000마리의 펭귄이 살고 있다. 소영일 전 연세대 교수는 그의 그림 ‘볼더스 해변’을 가리키며 “펭귄을 통해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데이트하자고 조르는 펭귄, 새끼를 바라보는 부모 펭귄, 엄마한테 야단맞는 펭귄….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볼더스 해변에는 약 3000마리의 펭귄이 살고 있다. 소영일 전 연세대 교수는 그의 그림 ‘볼더스 해변’을 가리키며 “펭귄을 통해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데이트하자고 조르는 펭귄, 새끼를 바라보는 부모 펭귄, 엄마한테 야단맞는 펭귄….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0년 전부터 녹내장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다. 두 번의 결혼도 실패로 끝났다. 행정고시 출신의 알려진 교수였지만 늘 행복에 목말랐다.

그래서 소영일 전 연세대 경영학 교수(67)는 행복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2010년에는 ‘행복의 탄생’ ‘행복의 열쇠’ ‘위험한 행복’의 행복 시리즈 3권을 썼다.

22일 작품을 전시 중인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하나로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행복론에 몰두했던 이유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톨스토이의 책 안나 카레니나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요.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연구하면 내 상황도 받아들이기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죠.”

그럼에도 극복되지 않았다. 지난해 치매 판정을 받은 노모를 홀로 간호하면서 그 우울감은 극에 달했다. “심장 치료제를 다량으로 삼키면 죽는다는 얘길 들었어요. 마침 처방받은 약 여러 개를 갖고 있었고요. 몇 번이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무렵,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행정고시 동기(23회) 이석연 전 법제처장(63)이 그림 그리기를 권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그림이 그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우울증도 점차 나아졌다. “그림이 하나 완성될 때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의 희열을 느낍니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스토리 작가도 되고, 영화감독도 되지요.”

그는 지난 5개월 동안 강원 원주의 작업실에서 내내 그림을 그렸다. 학자 출신답게 국내외 수백 권의 유화, 수채화, 스케치, 데생, 색채이론 서적을 탐독했다. 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제도, 콜롬비아 카뇨크리스탈강 등 세계의 유명 대자연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해당 장소에 대한 철저한 문헌 조사 덕분에 그의 그림엔 역사, 전설, 지리적 특징이 녹아 있다.

그렇게 그린 그림 25점이 29일까지 전시된다. ‘영혼을 맑게 해 주는 아름답고 놀라운 세계여행’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전시를 앞두고 투르크메니스탄 다르바자 가스 분화구 그림을 전시품에서 제외할까 고민에 빠졌다. 그때 전해진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조언이다. “형, 사람마다 그림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어요. 형 그림을 보고 관광객들도 많이 갈 수 있고요.”

현재 소 전 교수에게는 형태를 뿌옇게 구별할 수 있는 시력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요양원의 어머니를 보러 가는 시간을 빼면 그는 화폭에 매달리고 있다.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200점은 더 그릴 수 있길 바라요. 저는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림이 아니었다면 지금 저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소영일#행복의 탄생#행복의 열쇠#위험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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