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조수진]식약처장 ‘데자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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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에는 ‘데자뷔(d´ej‘a vu)’란 단어가 있다. ‘d´ej’a’는 ‘이미’, ‘vu’는 ‘보기’란 뜻이다. 우리말로는 ‘기시감(旣視感)’이다. 처음 간 곳인데 와 본 적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 같은 낯설지 않음을 뜻한다. 19세기 초 초능력을 연구하던 프랑스 심리학자 에밀 부아라크가 처음 썼다. 그는 망각하고 있던 기억이 유사한 경험을 만났을 때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이상하다고 느끼는 뇌의 신경화학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해석했다.

▷새삼 이 용어가 떠오른 것은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때문이다. 요즘 여의도에선 류 처장을 두고 ‘제2의 윤진숙’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2013년 2월 해양수산부 첫 장관으로 윤진숙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 본부장이 낙점을 받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른바 ‘수첩 인사’였다. 인사청문회에서는 “잘 모른다”고만 했고 취임해서도 좌충우돌이었다. 여수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때 피해 주민들 앞에서 손으로 코를 막은 사진이 신문에 실리자 “독감으로 인한 기침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입을 막았다”고 했다.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까지 “해임 건의를 고민하겠다”고 했고, 결국 경질됐다.

▷류 처장 임명 때 알려진 이력은 부산에서 약국을 운영했다는 것, 2012년 대선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했다는 것 정도였다. 임명 한 달 후 터진 ‘살충제 계란’ 파문 속에서 그가 반복한 것은 “잘 모른다”였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잘 모르면 브리핑도 하지 말라”고 공개 질타한 것을 두고 “총리가 짜증을 냈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이 “짜증이 아닌 질책 아니냐”고 따지자 “같은 부분이다”고 답했다. 오락가락 행태를 지적받자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비판받았던 것 중 하나가 수첩 인사였다. 수첩 인사로 발탁된 사람들이 잘했다면 ‘흙 속에서 찾아낸 진주’란 평가를 들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코드 인사’도 사람만 훌륭하다면 문제 될 게 없다. 류 처장 같은 사람 때문에 ‘수첩 인사’의 데자뷔를 느껴서야 되겠는가.

조수진 논설위원 sjcho3940@donga.com
#데자뷔#식약처장#류영진#윤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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