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5> 中 고속철 ‘푸싱호’ 발전이 한국에 주는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2일 16시 22분


코멘트
장쩌민의 룽칭샤 글씨
장쩌민의 룽칭샤 글씨

왕조가 바뀌면 나라 이름을 바꾸고 수도도 바꾸려고 한다. 지금도 최고 권력자가 되면 자신의 치적을 눈에 보이는 곳에 남기려고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런 점에서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낙서꾼’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큼 중국 전역에 자신의 글을 남겼다.

새로 개통하는 다리나 건물에 자신의 글씨로 제자(題字)를 하는 것은 그렇다쳐도 유명 관광지에 붉은 글씨로 글을 남기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인공 호수에서 배를 타고 협곡 사이를 1시간가량 오가는 베이징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룽칭사(龍慶峽)에서 배를 타고 올라 가다보면 호수 오른쪽 절벽 위에 새겨 놓은 ‘龍慶峽’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옆에 ‘江澤民’이 작게 새겨져 있다.

중국이 다음달 21일부터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구간에서 평균 시속 350km로 세계 최고의 고속철도를 운행한다고 중국철도총공사가 20일 발표하면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객차의 이름이 바뀐 것이다.


중국이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1주일 앞두고 베이징-톈진(天津) 구간에서 처음 고속철도 운행을 시작할 때 객차의 이름은 ‘허셰(和諧·조화)호’였다. ‘허셰’는 ‘과학발전관’과 함께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시대의 통치 이념인 ‘조화 사회’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허셰호’는 ‘후진타오 고속철도’가 아닌 보통 열차와 대비한 일반 명사처럼 사용됐다.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이 총서기에 선임되면서 최고 권력자가 바뀌었다. 시 주석 집권 후 측근 등용 등 여러 분야에서 1인 집권체제 강화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고속철도 노선 개통은 계속됐지만 모두 허셰호 그대로였다.

하지만 다음달 운행을 시작하는 ‘최고 시속 400km’의 총알열차의 이름은 ‘푸싱(復興·부흥)호’다. ‘부흥’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운 시 주석의 핵심 슬로건이다.

‘2세대 고속철도’ 푸싱호
‘2세대 고속철도’ 푸싱호

중국측은 푸싱호가 평균 속도가 과거보다 50km 가량 늘어나 더욱 빨라진 ‘2세대 고속철도’라고 부른다. 허셰호에 비해 좌선 간 간격이 넓어지고 객실 내 조명에 LED를 사용했으며 무엇보다 전 노선 전 좌석에 걸쳐 무선 인터넷이 제공된다고 한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시진핑 시대가 됐으니 고속열차의 이름도 바뀐다’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굳이 ‘2세대 고속철도’라고 할 만한 명분은 부족하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9년 12월 26일 후베이(湖北) 성 우한(武漢)에서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를 연결하는 우광(武廣)고속철도가 개통하면서 순간 최고 속도 시속 394.2km, 평균 시속 341km로 ‘푸싱호’와 큰 차이가 없다. 또한 중국 당국은 2011년 7월 저장(浙江) 성 원저우(溫州)에서 고속철이 추돌해 39명이 사망 한 뒤 일부 구간에서 350㎞로 운행하던 속도를 일률적으로 300㎞로 낮췄다. 기존의 철로와 시스템, 객차로도 속도는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시 주석의 브랜드인 ‘중화 부흥’ ‘중국몽(夢)’ 등을 부각하는 용비어천가나 작명이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푸싱호’ 작명에 대한 상념과는 별개로 중국의 고속철도 발전과 성장 속도는 경탄할 만하다. 중국의 첫 ‘징진 고속철도’를 운행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중국은 고속철도 관련 대부분 분야에서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고속철도 총연장 2만2000㎞로 가장 길고, 운행 최고속도, 평균 운행속도, 단일 구간 길이 등등.

고속철도 건설의 3요소인 △철로 노반 조성 △객차 생산 △운행 시스템 구축 등에서 대부분 국산화를 이뤘다. 처음 고속철도를 건설할 때 ‘고속철 선진국 3인방’인 ‘일본(신칸센) 독일(ICE) 프랑스(TGV)’에서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저울질하던 시절은 벌써 오래전 일이 됐다. 중국의 고속철 노선 거리 2만2000㎞는 전 세계 고속철 노선의 3분의 2에 해당하며 2020년까지 3만㎞로 연장할 계획이다.

2011년 6월 30일 징후(베이징~상하이) 고속철도를 처음 개통할 때 ‘고속철도를 타고 가면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다’고 홍보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다음달 ‘푸싱호’에서는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푸싱호가 투입되면 베이징 상하이 구간은 현재 일반 편 기준 5시간 30분에서 최단 소요 시간이 4시간 가량으로 줄어든다. 앞으로 이 구간에서 비행기(비행시간 약 2시간)보다는 고속열차를 타는 것이 더 편해질 전망이다.

한국은 2004년 4월 경부고속철도 일부 구간이 개통해 중국에 앞서 고속철 시대를 열었다. 한국이 고속철도를 건설할 때 중국측 관계자들이 참관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객차 등 고속철도 운행에 필요한 하드 및 소프트웨어를 중국에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 국산화 등 발전이 급진전되는 반면 한국 고속철은 잦은 고장과 사고 등으로 신뢰를 잃었다. 고속철도 건설 추진 논란으로 몇 년을 허송한 뒤 불과 몇 년 앞선 경험으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는 역부족이었다. 고속철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분야가 없지 않을 것이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