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오를텐데 전세로”… 강남 소형이 전세금 10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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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부동산대책 이후 전세난 조짐

강남권 실수요자 매입포기 줄이어
전세금만 3000만원 이상씩 뛰어
집주인, 양도세 부담만큼 올려받아

6월 완공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초 푸르지오 써밋’ 아파트는 여름철 비수기로는 이례적으로 이달 들어 30여 건의 전·월세가 계약됐다. ‘8·2부동산대책’이 나온 뒤 주변 고가 아파트를 매입하려던 내 집 마련 수요자들이 대거 전세로 돌아섰다는 게 주변 공인중개업계의 설명이다. 반면 같은 기간 이 단지에서 매매거래는 단 1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강남권 고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8·2대책발(發) 전세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의 집값 상승 전망을 어둡게 본 세입자들이 전세로 계속 눌러앉거나 집 장만 계획을 포기하는 사례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놓을 전·월세 시장 안정책에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미친 전세, 미친 월세 부담에서 서민과 젊은 사람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가격 안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추가돼야 하는 건 서민, 신혼부부, 젊은이들을 위한 주거복지 정책”이라고 말했다.

○ 매매 끊기자 전세금은 들썩

강남지역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8·2대책 발표 뒤 최근 2주간 반포 잠실 일대 아파트 전세금은 평균 3000만 원 이상 뛰었다. 일반적으로 휴가철과 무더위가 겹치는 8월은 전세 시장의 ‘휴식기’로 통한다. 하지만 올해는 전세 문의가 늘고 호가도 뛰고 있어 이례적이다.

2000년대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의 전용면적 84m² 이하 타입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했다. 서초구 반포동에서 드물게 중소형 타입을 갖춘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의 경우 지난달 중순까지 9억 원 안팎에 거래된 전용 59m² 아파트의 전세금은 현재 최고 10억 원에 호가되고 있다. 근처 ‘반포리체’ 전용 84m²의 전세금 역시 1개월 새 5000만 원 정도 뛰었다.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대치동 등의 경우 대규모 재건축 단지인 둔촌주공아파트(5930채), 개포주공4단지(2840채)의 이주가 임박하면서 전세금 상승세를 부채질했다. 대치동 ‘래미안 대치팰리스’, 잠실동 ‘리센츠’ ‘엘스’ 등의 시세도 이달 들어 면적별로 3000만 원 이상 올랐다.

현지 공인중개사들은 이 같은 전세시장 움직임의 원인을 매매시장 위축에서 찾는다. 반포동 가든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반포자이 등 고가 아파트를 매입하려던 수요자들이 대책 발표 직후 서초동 등의 신축 아파트 전세물량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집주인들이 전세금이나 월세를 올려 늘어날 양도소득세 부담을 메우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송파구 신천동 S공인중개소 대표는 “내년 4월부터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서 양도세 중과가 적용되지만 자금력 있는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올리며 ‘최대한 버틴다’는 태도”라고 귀띔했다.

○ 내달 전·월세 관련 대책 발표

정부는 전·월세 부담 완화에 초점을 맞춘 ‘주거복지 로드맵’을 다음 달 말에 발표할 예정이다. 로드맵에는 △신혼희망타운 5만 채 조성 △공적임대주택 연 17만 채 공급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확대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 방안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신혼희망타운은 일정 소득 이하의 무주택 신혼부부에게 주변 시세의 80% 수준으로 공급하는 분양형 공공주택이다. 수도권에서도 경기 과천지식정보타운, 위례신도시 등에서 우선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8·2대책이 다주택자 등 투기 수요를 규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로드맵에는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등록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가 포함될 방침이다. 임대사업자의 주택 구입 자금을 지원하고 양도세, 소득세 등의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대통령 공약대로 전월세상한제와 임차인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도입할 경우 역효과만 내는 ‘무리수’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뜩이나 기준금리 1%대의 초저금리 기조에서 부족한 전세 매물이 더욱 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 전세 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을 때도 전세금이 전국적으로 급등했다”며 “8·2대책 여파로 전·월세 시장의 부작용이 심각해질 경우 임대차분쟁 조정기구를 마련하고 공정 임대료를 제시하는 대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천호성 thousand@donga.com·정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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