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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사드 보복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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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사드 보복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주성하기자 입력 2017-08-17 03:00수정 2017-08-1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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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중국에서 가족이 체포된 한국 탈북민들이 9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북송을 하지 말아달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족은 14일 북송됐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주성하 기자
2년 전 쓰지 않았던 특종이 있다. 그해 9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 전승 70주년 행사에 참가해 대한민국 정상으론 최초로 톈안먼 성루에 섰다. 그로부터 딱 보름 뒤인 18일 멀리 북-중 국경에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이날 옌지공항에서 탈북자 30명이 중국 공안 차량에서 내려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은 한국으로 오던 중 7월 중순 쿤밍(昆明)에서 체포된 2개조와 칭다오(靑島)에서 체포된 1개조였다. 일행 속엔 수백 명의 부하를 두었던 북한군 군관 출신도 있었다.

이들은 탈북자들이 ‘도문 변방수용소’라고 부르는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 공안변방대대 변방구류심사소에 수감돼 있었다. 두만강 옆의 이 수감시설은 탈북자들이 북송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다. 이곳까지 가면 사실상 북송 확정이기 때문에 ‘도문까지 갔다’는 말은 탈북자들에겐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보위부도 어떤 탈북자 몇 명이 수감돼 있는지 건너편 감옥의 사정을 손금 보듯 파악하고 있다.


중국이 이곳에 수감된 탈북자를 공식 석방한 경우는 내가 알기엔 한 번도 없다. 그런 상상도 못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그것도 30명씩이나, 심지어 비행기까지 태워 준 것이다.

이들의 한국행은 명백히 박 전 대통령이 톈안먼 성루에 오른 데 대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이를 당일에 알고도, 난 이 역사적인 행운아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묻어버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이 중국에 강력히 반발해 다음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듬해 7월 한미 당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전격 발표하기 전까지 중국에서 탈북자들이 체포됐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중국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버젓이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온 것도 중국의 묵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지난해 지린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 일부 지역에선 중국 남성과 오랫동안 동거한 탈북여성과 자녀가 합법적으로 살도록 중국 당국이 호구까지 발행해 주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하지만 사드 배치 선언 이후 지난 1년 동안 중국의 탈북자들에겐 다시 지옥이 시작됐다. 한국행 길에 올랐던 탈북자들이 다시 무더기로 체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한국 기업이 피해 입는 소식은 많이 알려져도, 목숨을 잃는 탈북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말 미국을 방문해 확고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한 이후 중국의 탈북자 단속은 갑자기 크게 강화됐다.

지난달 중순에도 주요 탈북 경유지인 쿤밍을 휩쓴 대검거 바람에 버스로 몇 시간만 더 달리면 한국에 왔을 수십 명의 탈북자가 또 체포됐다. 이들 중 노동당 간부가 아내와 10대 자녀 3명과 함께 품고 있던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사랑하는 자식의 입에 독약을 밀어 넣어야 했을 부모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한국행을 시도한 탈북자는 무조건 살아나올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에 끌어가고 있다. 북송이 곧 죽음인 상황에서 그 가족은 고통스럽게 죽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지난달 체포된 탈북자들의 한국 가족 모임에 4일 찾아갔다. 북에서 탈출시켜 데려오던 어머니를 잃게 된 딸, 조카를 잃게 된 삼촌…. 일행 중엔 8세 여아도, 10세 남아도 있었다. 탈북기자가 뭔가 해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앞에 서는 것은 가슴을 허비는 고문이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이들이 찾아간 청와대와 외교부도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9일 중국대사관 앞에서 ‘내 가족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투먼’에 수감돼 있던 이들 가족은 14일 북송됐다. 중국이 논란이 커질 것을 우려한 듯싶다.

미국도 중국과 북한을 향해 온갖 제재 카드를 내놓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아킬레스건인 탈북자 문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결국 북한은 마음 놓고 탈북자를 죽이고 있고, 중국은 살인방조 행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가 죽는다고 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탈북자는 한반도에서 비운의 새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선양(瀋陽) 인근의 한 도시 감옥에 탈북자 50여 명이 수감돼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사드 문제가 빨리 원만히 해결되면 혹시 중국이 북송시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다고 한다. 사드 전자파와 소음이 환경 기준을 통과했다는 정부의 13일 발표를 접했을 때 난 그들을 떠올렸다.

사드가 앞으로 몇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탈북자 문제에 협조적이던 중국이 돌변하면서 지난 1년간 한국민이 될 뻔한 수백 명이 북에 끌려가 목숨을 잃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도 않고 있는 현실이 나는 더 슬프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사드 보복#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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