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수보회의…뒷줄 비서관도 “제 생각에는” 발언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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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24시 들여다보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탓에 초창기 혼선을 겪었던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본격적인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취임 초 대선 캠프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었던 문 대통령의 지근거리도 청와대 인사들이 속속 차지하고 있다.

○ 오전 9시 10분 티타임으로 업무 시작


문 대통령은 오전 9시 10분 여민1관 3층 집무실에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의 티타임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 임 실장 외에 보고할 게 있는 참모들도 참석한 가운데 지난 야간 상황을 보고받고, 당일 주요 현안을 점검한다.

집무실 바로 아래층에 사무실이 있는 임 실장은 명실상부한 청와대의 ‘원 톱’이다. 임 실장은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모든 공식·비공식 회의에 참석하고, 티타임 전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관한다. 5월 인사 파문과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 파문 당시 사실상 문 대통령을 대신해 사과한 것도 임 실장이다.

수석급 이상 중 가장 젊은(51세) 임 실장은 다른 참모들과의 소통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14일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원고를 각 수석실에 보내 의견을 물었다. 수석들의 견해를 존중하겠다는 취지였다.


○ 회의와 보고로 이어지는 오전


티타임이 끝나면 각종 임명장 수여식, 국무회의 등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에는 보고를 받거나 관련 대책을 논의한다. 최근 한반도 긴장 상황이 고조되면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보고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청와대와 각 부처가 참여하는 현안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것도 변화다. 청와대는 “부동산 등 현안에 대해 부처에서 파견을 받지 않고 TF를 꾸려 3∼6개월가량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는 부처 직원의 청와대 불법 파견 관례를 근절하겠다는 이정도 총무비서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캐비닛 문건’ 파문으로 문서 보안도 강화됐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이지원’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새 청와대 업무시스템에 문서를 올리면 자동으로 생성 번호가 부여된다. 결재·회람이 끝난 문서는 스캔해 전자 파일로 보관하고, 원본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한다.

최근 문 대통령은 공식 오찬이 없는 날이면 각 수석 및 비서관들에게 “점심을 같이하자”고 제안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장소는 청와대 구내식당이다. 큰 행사가 끝난 뒤 해당 실무진들을 격려하거나 참모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려 ‘점심 번개’를 친다고 한다. 또 문 대통령은 통상 매주 월요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오찬을 함께한다. ○ ‘시끌벅적’ 수보회의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는 수석·보좌관 회의는 과거 청와대와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이다. 각 실장·수석·보좌관은 물론이고 비서관들도 참석한다. 한 참석자는 “토론을 강조하는 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말 시끌벅적하다”며 “메인테이블 뒤편에 앉아 있던 비서관이 ‘저도 할 말이 있다’며 손을 드는 일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회의 자료를 취합, 정리하는 역할은 문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한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의 몫이다.

다만 정치권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달리 관료 출신 ‘늘공(늘 공무원)’ 참모들 중에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토론을 이어가는 문화를 여전히 낯설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참모로는 장하성 정책실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수현 사회수석이 꼽힌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정책실이 부활되면서 장 정책실장의 권한도 자연스럽게 강화됐다. 한 비서관급 인사는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윤 수석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가 두텁다”며 “김 수석은 말이 필요 없는 ‘왕 수석’”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탈(脫)원전 등 굵직한 정책들이 모두 김 수석의 영역이다. 윤 수석과 김 수석은 각 수석실 중 가장 많은 5개의 비서관실을 관할하고 있다.

또 수석·보좌관 회의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새로운 보고 트렌드가 생겼다. ‘법률적인 이유로’ ‘법적인 문제로’ 등의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관용적인 표현이지만 변호사 출신의 문 대통령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어떤 법률 조항이 문제인지 그 자리에서 확인한다”고 전했다. 청와대 수석급 이상 중 변호사는 문 대통령이 유일하다.

○ 문 대통령 아직 안가(安家) 사용 안 해

민주당 대표 시절부터 각종 보고서를 꼼꼼히 읽는 문 대통령의 습관은 청와대 입성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보고서를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부속실 직원을 통하지 않고 직접 참모에게 전화를 건다. 취임 초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실에 전화해 “임 실장 있습니까”라고 물어 직원들이 놀랐던 일은 유명한 일화다.

문 대통령이 관저로 퇴근하는 시간은 보통 오후 6∼7시경이다. 하지만 최근 세제 개편안, 8·2부동산대책 등 주요 정책과 북핵 문제로 참모들과 회의가 길어지면서 퇴근 시간도 늦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참모들과 회의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도 있고, 각계 인사들과 비공개 만찬을 갖는 일도 있다”며 “모두 청와대 경내에서 이뤄지고 있어 외부의 ‘안가(안전가옥)’는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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