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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전문기자의 스포츠&]드레스 코드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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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전문기자의 스포츠&]드레스 코드가 뭐길래

안영식 전문기자 입력 2017-08-16 03:00수정 2017-08-1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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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안영식 전문기자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얻어먹지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빌어먹는 것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가능하다는 뜻일 게다. 의식주(衣食住)라는 말의 순서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조상들은 먹고(食) 살기(住) 힘들 때도 입성(衣)은 신경 썼다고 한다.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측이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드레스 코드(dress code)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당사자인 선수들은 물론이고 일반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다.

LPGA는 ‘가슴골이 드러나는 상의 불허, 어깨 부분이 깊게 파인 레이서백은 옷깃(collar)이 있는 것만 허용, 레깅스는 치마 혹은 바지를 겹쳐 입어야 허용, 미니스커트 길이는 허리를 굽혔을 때 엉덩이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야한 옷 금지’다.

이 복장 규정은 권장이 아니라 강제다. 첫 위반 시 벌금 1000달러, 이후 위반 시 벌금이 두 배씩 늘어난다.



이에 대해 ‘에티켓이 중요한 골프에서 과도한 신체노출 금지는 합당’ vs ‘개성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설령 섹스어필 마케팅에 혈안인 골프웨어업체가 벌금을 대신 내준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복장 규정을 대놓고 어길 선수는 없을 듯하다. 괘씸죄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치명적인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프로골프(PGA)에 비해 인기가 덜한 LPGA 경기는 대회 흥행을 위해 TV중계 시간에 맞춰 철저하게 주요 선수 위주로 예선 1, 2라운드 조 편성을 하고 티타임을 배정한다. 만약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제 경기력을 발휘하기에 불리한 오전 일찍 또는 오후에 티오프해야 하고 TV 노출도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윔블던 테니스대회는 드레스 코드(머리에서 발끝까지 흰색 복장)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로열석 초청객은 정장 차림이 아니면 관람할 수 없을 정도다. 앤드리 애거시(미국), 로저 페더러(스위스) 등 내로라하는 스타 선수들이 대회 보이콧, 주황색 밑창 운동화 착용 등으로 크고 작은 ‘반항’을 해봤으나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윔블던 테니스 여자선수 경기복이 요즘 과다 노출로 지적받고 있는 LPGA 선수들보다 훨씬 노출이 심하다는 것이다. 윔블던 측은 색깔만 흰색이면 디자인이나 치마 길이는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LPGA 선수들이 더 야해 보일까. 심지어 여자 테니스 선수는 배꼽이 보일 정도로 치마가 너풀거리건만…. 두 종목 모두 스커트 안에 스포츠 트렁크를 입고 있지만, LPGA 선수의 움직임이 더 섹시해 보이는 것은 비키니 수영복보다 시스루가 묘한 성(性)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다. 드레스 코드도 그렇다. 한 사람이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방열 대한농구협회장이다. 실업농구팀 현대의 사령탑이었던 그는 정장 차림으로 공식 경기에 나선 국내 첫 감독이다.

지금은 농구 감독의 정장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예전에는 오히려 복장 위반이었다. 당시 방 감독은 라이벌 삼성과의 경기 때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선수단 유니폼 대신 양복을 입고, 나무 재질 코트 훼손 우려로 금지돼 왔던 구두를 신었다. 이로 인해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당해 2점을 먼저 내주고 경기를 시작했지만 승리를 거뒀다.

모임 또는 단체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다. 회사마다 사규가 다르고, 나라마다 의복 문화도 다양하다. 얼마 전 미국의 한 항공사는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탑승을 불허했는데, 그 승객이 직원용 탑승권을 소지하고 있어 직원 복장 규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드레스 코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코드(code)는 암호, 부호 이외에 법규, 규약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일단 정해지면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 입장 시 재킷 착용을 요구하는 골프장이 싫으면 다른 곳을 이용해야 한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불리는 현대인은 ‘호모 코드쿠스’이기도 하다. 무인도에 혼자 살지 않는 한 각 분야의 다양한 코드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몸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눈길을 끌 수 있다. 드레스 코드를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매력 넘치는 필드의 패셔니스타 탄생은 가능하다. LPGA 선수들은 윔블던 출전 선수들이 갖지 못한 ‘색깔’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옷만 잘 입는 선수가 아닌 옷도 잘 입는 선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
#미국여자프로골프 드레스코드 논쟁#골프 에티켓#윔블던 테니스 여자선수 경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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