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은택]영세상인 내몬 전통시장 부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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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급등에 장사 접고 떠나 ‘사람들의 삶’도 함께 살렸으면

이은택·산업부
이은택·산업부
지난해 8월 처음 찾아간 광주 광산구 1913송정역시장은 죽어가던 전통시장을 부활시킨 모범 사례였다. 1900년대 초 자연적으로 생겨난 옛 ‘송전역전 매일시장’은 2010년 전후로 주변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손님들을 빼앗겨 몰락해 갔다. 광주시,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현대카드는 시장을 다시 살리기로 계획하고 2015년 사업을 벌였다. 청년창업자를 시장에 유치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새 상권이 생겨나도록 한 것이다.

당시 만났던 청년사장들은 “어르신이 청년점포에 와서 물건도 사가고 조언도 해주신다. 우리도 어르신 가게에서 필요한 것들을 조달하며 같이 살아간다”고 말했다. 시장은 하루 방문객이 4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명소가 됐다.

1년이 지난 12일 기자는 휴일을 이용해 다시 송정역시장을 찾아갔다. 첫눈에도 간판과 품목이 바뀐 점포들이 제법 보였다. 소문난 맛집 앞에는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적어도 겉모습은 여전히 활기찼다.

하지만 다시 만난 상인들에게 안타까운 속사정을 들었다.

“손님이 많아지니까 임대료가 폭등했어요. 예전에는 월 30만∼40만 원이면 충분했던 점포들이 400만∼500만 원까지 치솟았어요. 옛날부터 계시던 상인 어르신들 중 많은 분들이 결국 견디다 못해 장사 접고 떠나셨어요.”

한 청년사장은 “말로만 듣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내가 있는 곳에서 벌어질 줄은 몰랐다”며 씁쓸해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상권이 활성화되면 임대료가 급등해 원주민, 영세상인이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송정역시장은 세련되게 바뀐 디자인으로 인터넷, TV에 자주 등장하며 몸값이 유난히 올랐다. 이곳은 원래 장사가 안돼 권리금도 없던 시장이었지만 최근 ‘점포 수리비’란 명목으로 권리금과 비슷한 항목이 생겨나고 있다. 이를 두고 이익을 본 상인과 그렇지 않은 상인들 사이에 갈등의 조짐도 보인다.

2년 전 시장 부활의 ‘구원군’으로 투입됐던 청년사장들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임차료 지원 혜택을 받고 아이디어를 무기로 창업했지만 당장 내년부터 지원이 끊긴다. 한 청년사장은 “맨손으로 가게를 일궈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데 지원이 끊기면 임차료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거액의 임차료를 제시하는 외지인, 카페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거나 건물주가 점포를 차릴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사업의 취지와 방향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다만 다시 살리고자 하는 것이 ‘상권’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살릴 수 있어야 온전한 전통시장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은택·산업부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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