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량도 3500장 뽑아와라”… ‘신의 직장’ 울린 갑질 공무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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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사무관, 국토정보公 직원에 진술서 집어던지고 “인사조치” 폭언
해당직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

올 4월 국토교통부 산하의 한국국토정보공사(LX·옛 지적공사) 강원본부장 A 씨는 정년퇴직을 하면서 감사원에 국토부 B 사무관에 대한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에 따르면 B 사무관은 근로감독을 이유로 강원본부 직원을 정부세종청사로 불러 수차례 진술서를 쓰게 했다. B 사무관은 작성된 진술서를 집어던지거나 해당 직원에게 고함을 치며 “본부를 떠나는 인사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직원은 이 사건 이후 수치심에 시달리다 최소 3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불면증 진단을 받았다. 이에 앞서 B 사무관은 근로감독을 이유로 내세워 컴퓨터로도 확인할 수 있는 5년 치 지적측량 결과도를 A2 용지 3500장에 출력해 제출하게 하는 등 직원들에게 부당한 업무지시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시를 수행하려고 3개 지역 본부 직원들이 사흘 동안 밤새 출력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이 감사원에 접수되면서 국토부 감사관실에서도 최근 조사에 착수했다. B 사무관은 “근로감독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서 “직원에게 사과하려고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와 LX 간의 관계 개선 용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생겨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LX 직원들은 “공무원과 산하기관 관계가 아니라 주종(主從)관계로 느껴질 정도였다”면서 “남들은 신의 직장이라고 부러워하는데 어디 하소연하지도 못해 끙끙 앓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최근 군 간부의 권력 남용 사례를 문제 삼고 유통업계와 프랜차이즈 업계의 갑질 근절에 나섰지만 산하기관에 대한 중앙부처 공무원의 이 같은 부당행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피해들은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해양수산부의 한 과장은 김영춘 장관의 취임 후 첫 현장방문에서 장관이 떠난 직후 산하기관 간부에게 삿대질을 하며 반말을 퍼부어 논란이 됐다. 김 장관은 이후 “해당 과장을 인사조치하는 등 엄중하게 다스리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사무관이 해외 출장 중에 아들의 영어숙제를 산하기관 직원에게 떠맡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금융위원회 사무관이 처음 본 산하기관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2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정부 일각에선 “정부가 매년 분기별로 감찰에 나서고 있지만 산하기관에 대한 정부부처의 ‘갑질’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알려드립니다]▼

본지는 8월 14일자 <“측량도 3500장 뽑아와라” 신의 직장 울린 갑질 공무원> 제하의 기사에서 국토교통부 B 사무관이 한국국토정보공사(LX) 직원이 작성한 진술서를 집어던지거나 부당한 업무지시를 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사무관은 “진술서를 집어던진 일이 없고, 관련 법령에 따른 정당한 업무지시였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국토부 사무관#한국국토정보공사#lx#감사원#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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