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탁현민은 ‘청와대 나꼼수’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0일 2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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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비하’로 해임논란 행정관
공연 속에 메시지와 감동 넣는 불세출의 연출자로 유명
2012년 ‘나꼼수 콘서트’ 이어 2017년 정책콘서트까지
청와대 행사를 공연처럼 연출
5·18기념식 포옹도 연출이었나… 대통령의 진정성 사라질 우려

김순덕 논설주간
김순덕 논설주간
6·25 때 주먹밥도 아니고, 황태절임을 먹으면서 ‘고난 극복’의 메시지를 알아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28일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만찬을 기획한 청와대도 그게 걱정됐던 모양이다.

‘셰프님 말씀’ 식순에 따라 등장한 임지호 셰프는 “황태가 추운 겨울에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만들어진 재료”라며 “사는 게 다 어렵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화합했으면 좋겠다”고 심오한 의미를 설명했다. “오호, 우리 셰프님은 음식 하나하나마다 다 뜻이 담긴 거예요?” 반색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보며, 요리사 섭외를 비롯해 행사를 진행한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모든 어려움이 녹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가 여성 비하 책을 썼다는 이유로 해임 요구가 거세다. 맞아 죽을 각오로 말한다면, 탁현민이 10년 전 에세이집에서 무슨 표절을 한 것도 아니고 야한 성의식을 글로 표현했다고 공직 박탈을 당해야 하는지 나는 의문이다.


도덕성을 코에 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성의식 비뚤어진 행정관이 웬 말이냐는 비난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수준임이 드러났다. 양성평등 정신에 어긋나는 책이라지만 탁현민은 일부 내용이 허구이고, 반성하고 있다고 수차 해명한 바 있다. 과거의 음심(淫心)과 표현이 마음엔 안 들지만 사상 검열을 금지한 헌법정신과 맞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당연히 문 대통령도 탁현민을 해임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선 전날 치른 ‘100대 국정과제 정책콘서트’를 언급하며 “전달도 아주 산뜻한 방식으로 됐다”고 이례적 극찬을 했다. 글로벌 지식강연 테드(TED)처럼 발표자들의 시선과 손동작까지 세심하게 연출한 탁현민에게 공개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처럼 탁월한 연출력을 가졌기에 탁현민은 청와대에 있어선 안 된다고 나는 본다. 쇼에 신경쓰느라 본질은 놓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금쪽같은 시간에 몇 번씩 리허설을 시킨 것은 이 정부 들어 첫 청와대 생중계행사여서라고 치자. 하지만 그 시간은 100대 국정과제 선정이 제대로 됐는지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할 시간이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는 들은 체도 않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쏴대는데 국정목표 다섯 번째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무슨 수로 실현할 건지, 대체 경제통일을 할 특단의 방법은 있는지 발표자는 설명하지 않았다. 청와대 영빈관을 메운 관계자들도 탁현민이 연출했던 문재인의 자서전 ‘운명’ 출간 기념 북콘서트(2011년)나 ‘나는 꼼수다 콘서트’(2012년)의 청중처럼 박수 치며 감탄했을 뿐이다.

‘촌스러운 선거캠페인’을 바꿔보겠다는 탁현민의 욕심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공연 기획·연출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려는 충정을 이해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뒤 다신 안 볼 것 같았던 후보들을 호프집에 앉히고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달라”며 화기애애한 장면을 찍은 뉴스를 보면, 탁현민의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부터 누구를 만나 어떻게 악수할 건지 세세하게 장면을 만들고 메시지를 날리며 감동을 자아낸 사람이 탁현민이라는 정평이다.

그러나 2015년 미국 찰스턴 총격사건의 희생자 추도식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직하게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것은 연출이 아니었다. 오바마의 사전 귀띔에 아내와 측근들이 반대했는데도 진정 부르고 싶어 불렀기에 감동을 준 것이다. 탁현민이 더는 대통령 곁에 있어선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태절임에서 메시지와 감동을 전달하려는 판에 대통령이 와이셔츠 차림의 수석들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청와대를 산책하는 모습은, 5·18기념식에서의 눈물은, 유가족과의 따뜻한 포옹은 연출이 아니었는지 더럭 의심스러워진다. 모든 정치적 행사를 드라마처럼 연출했던 히틀러나 괴벨스 얘기는 꺼내기도 싫다.

문 대통령의 진정성은 연출이 드러나지 않아야, 아니 없어야 국민에게 전달된다. 탁현민 없이는 ‘친구 같은 대통령’의 이미지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미지가 잘못됐거나 청와대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2012년 총선 직전 ‘나꼼수 막말 파문’이 터졌을 때도 당시 문 후보는 김용민 후보를 싸고돌아 정치적 판단을 의심받은 적이 있다. 나꼼수를 기획해 민주당 총선 패배에 일조했던 탁현민은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청와대를 떠나는 게 도리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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