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초유의 부채 전액 탕감… ‘빚 안 갚아도 되는 사회’ 만들 텐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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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6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장기 소액 연체자 중 상환을 하기 어려운 계층에 대해선 과감하게 채무 정리를 돕겠다”며 정부 예산으로 빚 전액 탕감 방침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과제로 제시된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장기연체채권 40만 개 소각’ 계획을 민간 대부업체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서민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공약은 있었다. 국민행복기금도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채권자인 은행들이 주도해 이자 면제와 원금을 최대 90%까지 깎아주겠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그러나 ‘채무 재조정’이 아니라 이번처럼 아예 원금을 전액 탕감해주는 정책은 유례가 없다. 국정과제대로라면 소각 채권 대상자가 40만 명, 1조90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주요 금융공기업과 대부업체까지 넣으면 100만 명까지 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규모도 규모지만 ‘빚은 갚아야 한다’는 신용사회 기본질서를 흔들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


빚 탕감은 다른 사람의 빚을 국민세금으로 갚아주는 정책인 만큼 국민 공감대가 필수다. 국민행복기금 콜센터에는 “안 갚고 버틴 사람 빚을 전액 탕감해 준다니, 내가 갚은 빚도 돌려 달라”란 요구가 빗발친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 빚을 갚아주면 언젠가 정부가 대신 갚아줄 것’이란 잘못된 신호를 준다. 왜 1000만 원은 되고 2000만 원은 안 되냐, 5년 연체자도 갚아 달라는 역차별 논란도 나올 수 있다.

취약 계층의 ‘빚 족쇄’를 풀어주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1000만 원을 10년이 지나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의 극심한 생활고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엉킨 금융정책을 적폐 청산이라도 하려는 듯 단칼에 밀어붙이려 한다면 또 다른 후폭풍이 기다린다. 한계 계층 지원은 기본적으로 금융이 아닌 복지나 일자리로 풀어야 한다. 국민행복기금도 출범 이후 채무조정을 도와준 58만 명 중 10만 명이 다시 채무불이행자가 됐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행복기금#최종구 금융위원장#정부예산으로 빚 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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