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도입 공판중심주의, 처음엔 검찰이 반발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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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前대법원장 회고록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20일 발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재직 시절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를 진행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재직 시절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를 진행하는 모습. 동아일보DB
“그동안 사법개혁이라고 해온 것들은 전부 법원과 판사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2005년 말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던진 화두다. 기존의 서면 기록 중심 재판을 탈피해 ‘법정을 중심으로 재판하자’는 공판중심주의와 구술주의를 형사, 민사 재판에 정착시킨 사법개혁은 이 전 대법원장의 이날 발언에서 시작됐다. 이 전 대법원장이 2005년 9월부터 6년간 사법부를 이끌며 느낀 소회를 담은 책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사진)에서 밝힌 내용이다.

20일 발간될 예정인 이 책은 권석천 JTBC 보도국장이 이 전 대법원장과 16차례에 걸쳐 매번 2, 3시간씩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다. 이 전 대법원장과 함께 근무했던 대법관들과 전·현직 판사들의 증언을 듣고 사실관계 검증을 거쳐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사실상 이 전 대법원장의 회고록인 셈이다.

이 전 대법원장이 강조한 공판중심주의는 검찰로부터 큰 불만을 샀다. 하지만 이 전 대법원장은 판사들에게 “결론만 옳으면 다 승복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재판의 중심은 법정”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수사기록에 주로 의존해 유무죄 판단을 했던 관행을 깨고 법정에서 실질적 재판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검찰의 반발이 이어지자 이 전 대법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대법원장이라고 세워놓고 검찰이 이렇게 흔들어도 되는 것이냐”고 항의했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은 별다른 대답 없이 침묵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침묵을 “법에 따라 국가기관이 운영돼야지, 대통령이 중간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대법원장으로서 대통령에게 얘기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며 노 전 대통령이 옳았다고 인정했다. 대통령에게 법원, 검찰의 갈등에 개입해줄 것을 요구한 일은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책에는 김영란 이홍훈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전 대법관 등 이른바 진보 성향의 ‘독수리 5형제’로 불린 대법관들이 임명된 배경도 담겨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8월 16일 이 전 대법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저녁식사를 하며 대법원장 지명 사실을 처음 전했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특정 인물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대법원 구성을 다양화해달라”며 “개혁적이고 젊은 사람들 좀 등용하면 안 되겠느냐”고 요청했다. 기존에 비주류로 분류됐던 법관들이 줄줄이 대법관에 임명된 데는 노 전 대통령과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다.

이 전 대법원장의 임기 중반, 이명박(MB) 정부가 출범하며 대법원과 청와대는 긴장관계로 바뀐다. MB가 1999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을 때 이 전 대법원장은 주심 대법관이었다. MB는 판결 직후 미국에 머물면서 대법원에 “이용훈 대법관의 판결은 오판”이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전 대법원장은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 편지의 내용이 생각났다고 밝혔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이용훈#공판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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