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보물 같은 아이’ ‘괴물 같은 아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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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슬픔 앞에서 때로는 눈물이 사치다. 8세 막내딸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은 17세 앳된 범인과 법정에서 첫 대면한 엄마의 심정이 그랬을 터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렇게 보낼 수가 없어 수목장을 했다. 언제나 같이 있어주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렇게 보냈다.” 살해범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며 차분하게 증언하는 엄마를 대신해 방청석에서 속절없이 눈물의 둑이 터져버렸다.

▷한국 사회를 경악하게 만든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이 그제 인천지법에서 열렸다. 이날 피해자 엄마가 ‘보물 같은 아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증언한 것은 “우리 막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범인이 똑똑히 인식하길, 죄에 합당한 벌이 내려지길 원했기 때문이다. 한데 피의자 김모 양은 잠시 우는 기색을 내비쳤으나 피해자 엄마의 퇴정 직후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단다.

▷이번 사건을 통해 웬만한 공포영화를 뛰어넘는 엽기행적이 줄줄이 드러났다. 우연히 공원에서 만난 초등생을 집으로 데려와 목 졸라 죽이고 시신까지 훼손한 범인이 뜻밖에도 고교를 자퇴한 10대 소녀였다. 아버지가 의사인 김 양은 어린 시절 해부학 서적을 즐겨 봤고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근래에는 인육을 먹는 주인공이 나오는 미드에 빠져들었다. SNS 친구인 공범 박모 양은 사전에 살인계획을 알고도 막기는커녕 시신의 일부도 건네받았다. 둘의 관계를 놓고 ‘기습키스’ ‘계약연애’란 단어들도 등장한다.

▷과연 김 양은 사이코패스인가,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증후군인가. 김 양 측은 ‘심신미약’을 주장하지만 이날 재판에 나온 심리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김 양과 수감생활을 같이 했던 증인에 따르면 정신병으로 판정받으면 감형된다는 얘기를 듣고 온 날 콧노래를 불렀고 그날 이후 부모가 넣어준 아스퍼거증후군 책을 탐독했다 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괴물 같은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지, 한국 사회의 심연을 들여다봐야 할 때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아스퍼거증후군#사이코패스#인천 초등생 살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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