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80년대 ‘가구王’, 29년만에 쓸쓸한 퇴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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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루네오, 7월 5일 상장폐지
국내 최초 자동화 설비 도입… 대단지 아파트 들어서며 승승장구
무리한 해외진출로 유동성 위기… 금융위기-경영권 분쟁으로 추락

“보루네오는 가구업계의 도요타가 되겠다.”

1988년 5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지면에 실린 위상식 당시 보루네오가구 대표의 말이다. 하지만 창업자인 위 대표의 꿈은 결국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가 포브스지와 인터뷰하던 해인 1988년 가구회사로는 처음 상장된 보루네오가구가 결국 29년 만에 상장폐지된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보루네오는 26일부터 7거래일간 진행되는 정리매매를 거쳐 7월 5일 상장폐지된다. 보루네오의 주가는 2015년 말 매매거래 정지 당시의 최종거래가인 969원이다.

2015년 12월 한국거래소는 전·현직 경영진의 경영권 분쟁이 계속되자 보루네오를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올리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매거래를 정지했다.

소송전이 길어지면서 수차례 심사가 연기된 끝에 2016년 4월 1년간의 개선 기간을 부여받았지만 올 3월 누적된 적자로 인해 2016사업연도에 자본의 50% 이상 잠식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위원회는 기업의 계속성, 경영의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이달 20일 최종적으로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다.

1966년 설립된 보루네오가구는 1970, 80년대 가구업계 1위를 지켜왔다. 창업자 위상식 씨의 동생 위상균 씨가 동서가구를, 막냇동생 위상돈 씨가 바로크가구를 세우며 한때 가구시장의 1∼3위를 모두 위 씨 형제들이 차지하기도 했다. 비결은 자동화 대량생산 시스템이었다. 보루네오는 1970년대부터 국내 처음으로 가구의 자동화 생산설비를 들여왔고, 대단지 아파트가 생기면서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리한 해외 진출이 발목을 잡았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기반이 되는 가구업계에서 준비 없는 해외 진출은 유동성 위기를 불렀고 결국 1992년 부도를 겪으며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당대 스타였던 최진실, 이덕화, 김희선 등을 모델로 기용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듯했지만 1998년 외환위기의 산을 넘지 못했다. 2001년 자산관리공사의 자회사인 캠코SG인베스트먼트가 인수한 뒤 2007년 세 번째 주인(거성건설산업), 2012년 네 번째 주인 AL팔레트로 주인이 바뀌며 부진이 계속됐다. 2013년 실적악화로 기업회생절차를 밟는 사이 최대주주는 주식을 처분했고, 이후 회사의 경영권 분쟁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최근 5년 동안 최대주주가 11차례 바뀌었다. 이 와중에 경영진은 바이오, 발광다이오드(LED)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려다 실패만 맛봤다.

보루네오가 상장폐지가 됐다고 해서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보루네오의 한 직영 매장 관계자는 “평상시처럼 점포 운영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실적은 악화일로다. 2012년부터 5년 연속 100억 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 1342억9107만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324억3389만 원으로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김현수 kimhs@donga.com·주애진 기자
#보루네오#상장폐지#해외진출#금융위기#경영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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