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누군가의 은밀한 욕망과 마주하는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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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코끼리와 춤을/페터 회 지음·이남석 장미란 옮김/568쪽·1만5000원·사계절

“그 순간 우리는 엄마 아빠를 용서한다. 더는 말하지 않는다. 그 문제는 부모님의 악몽 속에서 다시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나는 깨닫는다. 남들에게 관대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코끼리 또한 용서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14세 소년 페테르는 피뇌섬이라는 곳에 산다. 교회 목사인 아빠와 오르간 연주자이자 발명가 엄마를 뒀고,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다. 여행을 떠난다던 부모님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목사 부부를 찾기 위해 놀랍게도 경찰 정보국은 물론이고 신경의학자, 피뇌섬을 총괄하는 도시의 최고책임자 등 사회 권력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알고 보니 부모는 ‘대종교회의’가 열리는 코펜하겐에서 종교 보물을 훔치려는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온갖 일을 벌이고 있었다. 하느님을 섬긴다던 부모님이 마세라티를 몰고 밍크코트를 휘감고 다니던 모습이 그제야 달리 보인다.

그 나이에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페테르는 진지하면서도 익살스럽게 상황에 대처해 간다. 오히려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에게만 향해 있던 시선을 바깥으로 돌린다. 내면에 자신만의 ‘코끼리’를 키우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그런 면에서 일종의 성장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페터 회의 이전 작품인 추리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1992년)이 인간에 대한 고요하고 깊은 이해와 성찰로 주목받았다면 이번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게 다룬다. 접근 방식이 무겁지 않아, 저마다 마음속에 키우고 있는 ‘욕망’이라는 코끼리를 부담 없이 들여다보게 한다.

작가는 “코끼리를 가진 사람들은, 아니 우리 모두는 뭔가 더 심오한 것을 찾고 있다”며 “어쩌면 더 깊은 사랑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쉽게 얻을 수 없으며 그래서 바깥으로 눈을 돌려 부나 권력, 명성, 다른 것들을 정복하는 것에 그 욕구를 투영시킨다”고 말한다. 책은 나의 코끼리는 무엇일지, 또 불현듯 누군가의 코끼리를 날것 그대로 목격하는 순간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당신의 코끼리와 춤을#페터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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