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한국 그래픽디자인 1세대’ 양승춘 서울대 명예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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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엠블럼 만든 디자인계 거목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엠블럼을 디자인했던 양승춘 서울대 명예교수가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대의 마지막 학사 교수로도 알려져 있다. 양진모 씨 제공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엠블럼을 디자인했던 양승춘 서울대 명예교수가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대의 마지막 학사 교수로도 알려져 있다. 양진모 씨 제공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엠블럼을 만든 양승춘 서울대 명예교수가 20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77세.

양 교수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의 1세대 디자이너로 꼽힌다. 1965년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 OB맥주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그는 국내에 기업이미지(CI)라는 개념을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 등 대기업의 초창기 CI는 대부분 양 교수의 손을 거쳤다. 한국주택공사 한일은행 국립현대미술관 등 그가 이끈 CI 작업은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았다.

양 교수의 대표작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엠블럼이다. 파랑과 빨강 노랑의 전통 삼태극 문양을 재해석한 것이다. ‘동서 화합’과 ‘세계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세계로’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엠블럼 탄생 배경도 눈길을 끈다. 당시 엠블럼 공모전에 참가한 양 교수는 마감이 임박했는데도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머리를 식힐 겸 세수를 하러 갔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진 물이 세 갈래로 돌며 빠져나가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엠블럼 디자인을 만들었다.

‘I♡NY’ 로고를 만든 세계적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는 지난해 역대 올림픽 엠블럼을 평가하며 서울 올림픽에 상위권인 75점(100점 만점)을 매겼다. 그는 “친숙하지 않은 디자인임에도 엄청난 임팩트가 있고 조화롭다”고 평했다.

디자인만큼이나 강단에서의 자취도 남달랐다. 1968년 그는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 교수에 임용됐다. 대학 졸업 3년 만이다. 학사 학위가 전부인 걸 감안할 때 파격적인 부임이었다. 37년간 강단을 지킨 양 교수는 2005년 서울대 마지막 학사 교수로 퇴임했다.

정년퇴임 후에도 강단을 떠나지 않았다. 2008년 서울과학기술대 나노IT융합대학원이 개원했을 때 5년간 전통 디자인 강의를 진행했다. 당시 양 교수에게 강의를 부탁했던 나성숙 서울과기대 디자인학과 교수는 “양 교수님은 학생들을 정말 사랑했던 분”이라며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나 교수는 “지금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분”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논문을 쓰는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2주에 한 번씩 고민을 상담하고 참고서적을 추천했다. 나아가 박사과정 학생들의 논문 작성을 돕는 사단법인 설립도 시도했다. 그러나 3년 전 양 교수가 위암 수술을 받으면서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다.

22일 오전 발인을 마친 후 양 교수의 장남 양진모 씨(50)는 “아버지의 원동력은 ‘즐거움’이었다”며 “디자인 작업을 워낙 좋아하셔서 한창 때는 며칠 밤을 새우며 작업하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최근까지 한 인테리어 전문 업체의 고문으로 회사 일을 도왔다. 진모 씨는 “나이가 드셔서 밤샘 작업은 못 하시니 제가 도와드리곤 했다”며 “제 옆에 앉아 지켜보면서 마음에 안 들면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이리 줘봐’ ‘넌 아직 실력이 멀었어’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한국 그래픽디자인 1세대#양승춘 서울대 명예교수#88 서울 올림픽 공식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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